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를 겪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사건은 한국 복지 정책의 그림자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비극이 몇 년에 한 번씩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예고된 참사’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는 또다시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복지 체계를 촘촘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제3, 제4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2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망 사건’ 이후 복지 예산을 늘리고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과 상시적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을 운영해왔지만 수원 세 모녀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정부는 송파 사건을 계기로 18개 기관으로부터 단전·단수·보험료 체납 등 34종류의 정보를 받아 이 중 상위 2∼3%인 집중조사 대상 가구를 지자체에 통보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도 월 1만원 대의 건강보험료를 16개월간 체납해 ‘위기정보 입수자’ 명단에 들어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복지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안내하는 제도를 확대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전병왕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9월6일 새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오픈돼 발굴 시스템 연계 정보가 34종에서 39종으로 확대된다”며 “이게 앞서 됐다면 수원 세 모녀 사례도 고위험군에 포함돼 지자체에 통보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음 달부터 △중증질환 산정특례 △요양급여 장기 미청구 △장기요양 등급 △맞춤형 급여 신청 △주민등록 세대원 등이 항목에 추가된다.
문제는 인력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도와달라고 스스로 찾아오기 전 정부·지자체가 먼저 찾아내는 구조를 만들려면 결국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많은 공무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등 관련 업무에 집중 배치된 상황이다.
공적 정보가 당사자들의 실생활을 담지 못한다면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 세 모녀는 건보료 체납 외에도 34종에 있는 ‘세대주가 사망한 가구’에 해당했고, 빚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복지부가 입수한 정보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실제 생활 환경이 공적인 정보 시스템을 통해 확인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며 “연체 정보는 과거 2년 동안 연체된 금액이 1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하인 경우가 입수 기준인데 여기에 포함이 안 됐을 수도 있다.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