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아들’ 尹 취임 110일만에 방문… TK민심 향방은 [뉴스+]

TK, 압도적인 득표율로 尹대통령에 화답
“대구의 아들, 당선되니 대구 관심 있었나”
김건희 여사·사적채용 등 논란에 등 돌려
한 관계자 “근본적인 해결책 필요” 분석

“대구가 키운 저 윤석열이 대구를 확 바꾸겠습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의 첫날이었던 지난 2월 15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동대구역 광장을 찾았다. 그는 “민주당 정권 5년으로 망가진 대한민국, 망가진 대구를 그야말로 단디(단단히의 경상도 사투리)해야하는 선거다. 저 윤석열이 대구의 부활을 반드시 이끌겠다”고 호소했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대구·경북)는 70%가 높은 압도적인 득표율로 윤 대통령에게 화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윤 대통령과 TK의 아름다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인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잡음과 사적채용과 관련한 논란, 문자파동으로 표면화된 국민의힘 내홍에 전통적인 보수층인 TK는 등을 돌렸다. 뒤늦게 윤 대통령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대구를 찾았지만 과연 돌아선 집토끼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구의 아들 자처한 윤석열, 110일 만에 대구를 찾다

 

윤 대통령은 26일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구를 찾았다. 이날 오전 대구에서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연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스킨십을 강화했다. 이 곳에서 윤 대통령은 장바구니를 들고 모자가게와 이불점포 등을 둘러봤다.

 

윤 대통령은 “선거시절에 여러분들께서 저를 열심히 성원해주고 지지해 주시던 그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며 “제가 어려울 때도 우리 서문시장과 대구시민들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또 최근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의식한 듯 “추석 물가도 잘 잡겠다”고 말했다. 이날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와 함께 서문시장을 찾은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상인회 간부 등을 만나 전통시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위치한 서문시장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라는 점과 보수정치인들이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순례길’로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의 경우 대선 전후 5차례 서문시장을 찾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권력이 서문시장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서문시장뿐만 아니라 대구는 윤 대통령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자신을 대구의 아들을 자처했다. 그는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대구에서 시작했다. 어려울 때마다 대구가 깍듯이 맞아줬고 저를 이렇게 키웠다”며 “그런 면에서 저는 대구의 아들과 다름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윤 대통령이 과거 신림동 고시 낭인에서 사법시험 9수 끝에 1994년 검사로 첫발을 내디딘 곳이 대구지검 형사1부였다. 2013년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당시 항명 파동으로 좌천 됐을 때 몸을 담은 곳도 바로 대구고검이었고, 지난해 3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사표 수리 전 검찰총장으로 마지막 방문한 곳도 공교롭게도 대구고검과 지검이었다.

2013년 6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최종 수사결과 발표장에서 윤석열 당시 대구고검 검사(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이런 윤 대통령의 호소에 TK 시민들은 높은 지지율로 답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구는 투표인 수 161만1500여명 가운데 윤 대통령이 119만9800여 표를 얻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75.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4만5000여 표를 받아 21.6%에 그쳤다.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으로 성난 TK 민심 돌아올까

 

“필요할 때는 대구의 아들이라고 하더구먼, 당선되니 대구에 관심이나 있었나요.”

 

대구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박모씨는 “대선 후보 때는 ‘대구가 키워줬다’, ‘대구를 위해 뛰겠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제대로 대구를 챙긴 일이 있느냐”고 일갈했다. 국민의힘 당원이기도 한 그는 “윤 대통령을 선뜻 뽑은 것은 대구의 아들이라고 말했던 그 진정성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민생은 안 챙기고 매일같이 논란거리만 나오니 누가 지지하겠느냐”고 비판했다.

 

박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TK에서조차 10명 중 6명 이상이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유권자 10명 중 7명의 선택을 받았던 지난 대선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상인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갤럽이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평가한 결과 긍정평가는 27%, 부정평가는 64%로 집계됐다. 특히 보수 텃밭이라고 불리는 대구·경북에서마저도 긍정평가(39%)가 부정평가(48%)를 앞선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응답률은 10.9%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또는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이번 대구 서문시장 방문에 대해 애써 민생 행보의 일환일 뿐이라며 선을 긋곤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등 돌린 TK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으로 떠나간 집토끼가 쉽게 돌아올지는 불투명하다. 이번 보수층의 이탈은 국민의힘 내홍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 사적채용, 인사 등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서문시장 방문만으로 TK 보수층의 민심이 쉽게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구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대구에서 보수정당이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분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며 “젊은 부부들은 만 5세 입학 논란으로 등을 돌렸고, 청년세대들은 대통령 집무실 채용 논란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