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결과물인 유엔은 세계평화를 가장 앞장서 지켜야 할 막중한 책무를 미국·영국·소련(현 러시아)·중국·프랑스 5대 강대국에 맡겼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가 바로 그것이다. 책임이 무거운 만큼 그에 따른 일종의 특권도 부여했다. 유엔의 모든 회원국들 중 오직 안보리 상임이사국만 갖는 ‘거부권’(veto power)이다. 애초 이는 5대 강대국끼리 서로 싸우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로 고안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5대 강대국 중 어느 한 나라가 세계평화를 깨고 국제질서를 어지럽혀도 다른 나라들이 개입할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방탄막’으로 변질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이다. 유엔 안보리는 즉각 러시아를 규탄하고 침략자를 제재하려 했으나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혀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다. ‘총을 쥔 경찰관이 무장 강도로 돌변하면 속수무책’이란 말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강대국 간에 전운이 감돌고 이를 막아야 할 국제기구는 제구실을 못 하는 상황에서 유엔의 역할을 모색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 한국유엔체제학회가 강원대, 외교부와 공동으로 29, 30일 이틀간 주최하는 한국유엔체제학회 하계 학술대회가 그것이다. ‘강대국 시대 신흥 안보와 유엔’을 주제로 한 이번 학술대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완전히 달라진 국제 안보환경부터 미·중 패권 갈등 격화 속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전략까지 폭넓게 다룬다.
강원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이신화 한국유엔체제학회 회장 겸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김헌영 강원대 총장을 비롯해 국내외 학자 및 관계자 60여명이 참석한다. 강원대 미래도서관과 평생교육원 등 행사장과 유튜브 온라인 생중계를 통한 온‧오프라인 병행 방식으로 진행된다.
행사 첫날인 29일에는 △데이터를 통해 본 유엔과 국제정치 △미·중 다자주의 전략경쟁과 신정부의 외교전략 △다자 네트워크와 한반도 △새로이 부상하는 외교안보 전략환경과 국제관계 등 세션이 진행된다. 둘째 날인 30일에는 △기능주의 다자협력과 북한 △정치와 경제 불균형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국제규범 △인도주의·개발·평화 삼각관계와 유엔의 역할 등을 주제로 세션이 구성된다.
강원대 산하 통일강원연구원 송영훈 원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은 “이번 회의는 글로벌 위기의 시대 유엔의 새로운 역할 뿐만 아니라 로컬 단위의 SDGs(지속가능 개발목표) 실현방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라며 “새롭게 부상하는 글로벌 협력시대 강원대의 미래 구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