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인사기 피해자에 코인 보상 방안 논란

2조원대 ‘다단계 코인투자 사건’ 1년… 수상한 비대위

“처벌불원서 쓰면 태국 코인 지급”
‘징역 22년’ 가해자 항소심 중 공고
“한 푼이라도 받자” 일부 합의 위임

법조계 “돈 받기 前 합의는 비상식”
비대위선 “정해진 건 없어” 해명

“코인으로 사기치더니 보상을 코인으로 준답니다.”

 

2조원대 코인 투자 사기 ‘브이글로벌 사건’의 피해자 A씨는 투자피해자 전국 비상대책위원회의(비대위) 피해보상 공고문을 보고 황당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비대위의 공고문은 사기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브이글로벌 대표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쓰면 피해를 보상해주겠다면서, 보상금을 현금이 아닌 코인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A씨는 “(브이글로벌 대표가) 사기 치다 걸려놓고 끝까지 자기 빠져나갈 길을 만들려 한다”며 “피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는데 그 절박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 인감 등 요구한 비대위 공고문 브이글로벌 투자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피해보상을 하겠다며 올린 공고문. 독자 제공

지난해 가상화폐 투자 열풍 속에 2조원대 투자 사기로 이어진 브이글로벌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 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건 발생 후 1년여간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처벌불원서를 조건으로 한 보상안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혼란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코인의 현금화 가능 여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합의를 하면,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브이글로벌 대표에게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8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비대위가 지난 9일 피해자들에게 보낸 공고문에는 이달 31일까지 피해합의위임장과 주민등록초본, 인감증명서 등을 제출하면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브이글로벌은 2020년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5만여명을 대상으로 약 2조원을 끌어모은 다단계 금융사기 업체다. 브이글로벌 대표 이모(31)씨는 공범들과 함께 2020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300%의 수익을 보장하겠다’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꼬드겨 5만2419명으로부터 2조2294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이씨는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현재 수원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다음달 1일 항소심 4차 공판이 열린다.

 

문제는 비대위가 피해보상을 현금이 아닌 코인으로 지급하겠다고 한 점이다. 비대위는 이씨의 지인이 피해보상을 제안해왔다며 ‘태국에 설립된 거래소에 상장돼 현금화가 가능한 코인’으로 피해액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코인은 곧바로 현금화할 수 없다.

 

비대위는 안내문에서 “지급받은 시점으로부터 2개월 후부터는 지급된 코인의 30%를 임의 매도해 현금화할 수 있으며, 5개월 후부터는 수령한 코인에 대해 100% 매도와 현금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피해보상이 시급한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절박한 마음에 속는 셈 치고 서류를 제출했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코인으로 피해를 보상하는 건 또 다른 사기’라며 분노하는 피해자도 있다. 한 피해자는 “보상액이 0원이 될 바엔 한 푼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심정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통상적인 사기피해 보상 절차와 다르다는 점에서 주의를 당부한다. 통상 피해보상은 현금으로 이뤄지고 처벌불원서도 합의금을 받고 써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경우는 순서가 반대라는 것이다. 피해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내고 나면 추후 민사소송 제기 등이 어려워지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기사건 전문가인 천호성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는 “현 조건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며 “먼저 합의서를 써주는 건 (피해자들이) 잘 생각을 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아직 어떤 코인으로 지급할지 정해진 게 없어 현재는 서류 접수를 받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기석도 비대위 위원장은 본지 문의에 “이야기할 내용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