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칸 반지하 ‘서울살이’ 10명 중 3명 “재해 불안” [심층기획-서울 반지하 지우기 ‘허와 실’]

(상) 각양각색 삶이 있는 반지하

지상 빌라보다 35% 저렴
사회초년생·신혼부부엔
비싼 서울 땅서 대안 없어

“모든 반지하가 ‘기생충’ 같진 않아… 교육·교통 인프라 만족”

저렴한 월세로 ‘서울 생활권’ 긍정적
채광·환기·악취·벌레 등은 단점 꼽혀

최근 폭우 피해자들 거처 옮기기 ‘시름’
“반지하 사라지면 고시원·쪽방 내몰려”

전문가들 “일방적 멸실정책 대안 못 돼
가구 상황에 맞는 맞춤 주거복지 펴야”

115년만의 최악이라고 규정된 폭우가 휩쓸고 간 지 이틀 만인 지난 10일 서울시는 모든 반지하 주택을 10∼20년에 걸쳐 없애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공공임대주택 물량 23만호 이상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축으로 신축 건물 인·허가 과정에서 반지하는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고, 기존 세입자가 지상으로 이주할 경우 주택 바우처(월 20만원씩 최장 2년간 지원)를 지급해 반지하 주택을 점차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파악된 반지하 주택은 약 20만호다.

 

현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계획대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이뤄질 가능성이 떨어지고, 옥탑방이나 고시원 등 다른 주거취약계층과 형평성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반응엔 근거가 있다. 서울 전체 가구의 5%인 약 20만호가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 말해주듯, 반지하 주택은 지상 주택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다양한 삶의 근거이다. 생존의 문제는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다가오지만, 누군가에게는 반지하 주택이 희망이다. 1층 이상의 거주가 영원히 보장되는 게 아니라면 서울시의 방침을 따라 저렴한 반지하 주택을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아보인다.

◆반지하 가구의 월수입은 164만원… 월세는 31만원

 

28일 세계일보가 국토교통부 ‘2020년 주거실태조사’의 마이크로데이터(MDIS)로 서울의 지하·반지하 주택 가격을 분석한 결과 평균가는 2억4636만원으로 지상에 있는 빌라(다가구·연립·다세대 주택) 평균가(3억8203만원)보다 35%가량 저렴하다. 평균 전용면적은 40㎡로 지상 빌라 평균인 54.2㎡에 비해 다소 좁았다. 저렴한 가격이 거주지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언니, 초등학생 딸과 살다가 입원한 노모와 영영 헤어지게 된 40대 여성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반지하 가구의 54.3%는 보증금 있는 월세를 살고 있다. 보증금 1488만원에 월 31만원이 평균치이다. 지상 빌라의 보증금 3161만원, 월 41만원과 비교하면 꽤 저렴하다. 반지하 가구의 평균 월수입은 164만원으로 지상 빌라 가구의 평균 수입 274만원보다 한참 낮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반지하에 살고 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반지하 가구의 17.4%는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맞춤형 급여)를 받고 있다.

 

반지하 주택은 거주자들에게 위험한 장소로 인식될까. 반지하 가구의 66.9%는 산사태, 홍수, 지진 등 재난·재해 대비 정도에 대해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지상 빌라 가구(87.1%)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재난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수치는 아니다. 반면 채광(29.2%), 환기(45.5%), 방수(50.1%), 악취·벌레 등 위생(61.7%) 평가에서 반지하 주택에 대한 만족도는 낮다. 어쩌다 겪는 수해 혹은 산사태보다는 매일 괴롭혔던 대상이 곰팡이와 벌레, 환기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서울시가 이번에 내놓은 반지하 주택 대책이 수해 대책일 뿐이지, 주거 대책은 아니라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10년 넘게 서울 종로구 소재 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했다는 박인수(가명·45)씨는 “서울시에서 수해 피해를 없애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대책이겠지만, 지금 지하방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지하방 세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15일 서울 시내 한 반지하 주택 모습. 연합뉴스

◆반지하 주택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도 많아

 

직장인 이모(57)씨는 이전에 살던 동네 재개발로 2020년 직장 근처 서울 강서구의 한 부동산을 찾았다. 중개인은 “급매물이다. 반지하라도 1억원 매물을 어디서 구하겠느냐”며 “이 지역은 재개발이 될 수도 있는데 위층이나 지분은 똑같다”고 강조했다. 중개인이 소개한 30평대 반지하는 방화동 언덕에 있었다. 호수에 BOO이 붙었지만 사실상 1층이나 다름없는 구조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했던 이씨는 직장 근처 반지하로 이사온 게 좋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직장과 대형마트가 10분 거리에 있다는 장점이 컸다. 화장실에 습기가 잘 차긴 하지만 이전에 살던 3층 빌라도 비슷한 환경이었다. 이씨의 반지하도 최근 서울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2년 만에 1억원 넘게 올랐다. 그는 “우리 집처럼 반지하라도 괜찮게 지어진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모든 반지하 주택을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침수 주택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회초년생 이영식(31)씨에게 반지하는 최선이었다. 취업을 위해 지방에서 온 이씨에게 성북구의 6평 반지하는 서울에 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 찾다 찾다가 반지하로 왔다”며 “돈이 없는 사회초년생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안은 반지하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집을 계약하고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순간은 이씨에게 행복이었다. 방 한 칸이지만 침대, 소파, 빔프로젝터 등을 설치해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한번은 그 모습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곧바로 ‘인테리어 꿀팁’을 물어보는 반지하 미생(未生)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반지하의 공통 고민은 습기다. 이씨는 제습기를 돌려 습도를 50% 아래로 유지한다고 했다. 이씨의 집은 고지대에 위치해 이번 폭우에도 침수 피해가 전혀 없었다.

 

대부분 반지하 주택의 주거 환경이 열악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방에 30년을 살았다는 김성근(80)씨는 “환기가 안 되고 곰팡이 냄새 때문에 여름마다 문을 열어두고 살아야 한다”며 “바닥에 곰팡이가 검은색으로 피는데 걸레로 닦아내도 며칠 뒤 다시 그 자리에 곰팡이가 펴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교통의 중심 서울이라는 점은 반지하 주택을 선택하게 했다. 김씨는 “젊었을 때 건설 일을 했는데 여기가 터미널과 가까워 전국으로 일 다니기 정말 좋았다”며 “돈이 없으니까 입지 하나만 보고 이 방에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7평 방 한 칸인 김씨의 집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40만원. 김씨는 이곳이 사라지면 고시원과 쪽방 등 더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릴까 시름이 깊었다.

 

주거실태조사 분석 결과 서울의 반지하 거주자 10명 중 8명은 현재 주택의 상업시설·병원·공공기관·대중교통 접근성에 만족하다고 답했다. 전반적인 주거 환경 만족도도 74.1%로 나타났다. 반지하라도 여느 고가 주택처럼 서울의 풍부한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지하 멸실보다는 주거복지 정책에 우선 둬야”

 

서울 강남구 반지하 주택에서 아이 3명을 홀로 키우고 있는 40대 김모씨에게 교육, 교통 접근성은 입지 선정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방이 3개이면서도 보증금과 월세가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반지하는 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가왔다. 반지하 주택의 환경은 열악했다. 하수관은 수시로 역류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이 일상이었다. 매년 폭우가 내릴 때마다 크고 작은 수해가 있었지만, 최근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위태롭던 김씨의 집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김씨는 “노후했어도 입주 당시 이 정도 가격에 이 집만큼 넓은 곳을 찾기 어려웠다”며 “당장 새로 살 집이 필요해 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지만 들어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임시 거처에 머물며 새 보금자리를 찾고 있지만 그의 앞에 놓인 선택지는 또다시 반지하 주택이 될 확률이 높다. 박재영 강남주거안심종합센터 주거상담소장은 “아이가 많은 가족은 반지하 주택 말고는 사실상 대안이 없다”며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대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평형이 거의 없어 돈에 맞춰 넓고 싼 반지하 주택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지하 주택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주차장법이 개정됨에 따라 현재 반지하 주택 상당수는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들이다. 반지하가 소멸하는 과정에서 강제적인 반지하 멸실 정책을 펴기보다 가구마다 놓인 상황에 맞춘 주거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강훈 주거권네트워크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는 “보통 서울이나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지상층에 입주할 재정적인 여력이 되지 않아 형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반지하를) 선택하게 된다”며 “반지하 주택 중에는 주거 상태가 아주 열악한 곳도, 적당히 살 만한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대로 된 반지하 주거 대책이 되려면 거주민들이 다양한 형편에 맞게 이주할 수 있는 세부적인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각각의 주거 상태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