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행인들의 발걸음만 보이는 ‘앉은뱅이집’ 반지하는 누추함의 상징이지만, 시작은 달랐다. 초창기에는 저소득층 거주용이 아닌 대피소·방공호나 보일러실로 만들어졌다.
반지하는 1970년 대피소 확보를 위한 건축법 개정과 함께 본격 등장했다. 당시 한국은 북한 공작원이 서울로 침투한 ‘김신조 사건’이 발생하면서 안보 강화가 긴급했다. 1968년 5월 김현옥 서울시장은 “71년도까지 350만명의 시민을 전시체제하에서 대피시킬 수 있는 방공호 구실을 할 지하 건설을 하겠다”며 “이를 위해 앞으로 건축법을 개정해 2층 이상은 지하에 창고를, 3층 이상은 건물 수용 인원의 70%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나 창고시설을 갖추도록 강제 규정을 넣겠다”고 했다. 1970년 개정된 건축법은 인구 20만명 이상인 도시에서 지상층 연면적이 200㎡인 건축물을 지으면 지하층을 만들도록 했다. 이 규정은 1999년에야 사라졌다.
반지하 확산의 불을 댕긴 것은 1984년 주택난에 따른 정부의 다세대주택 도입이다. 1990년 다가구주택 도입은 반지하 확대의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전·월세 대란으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자 정부는 다가구주택을 도입해 해결하고자 했다.
이렇게 생겨난 반지하는 저소득층의 보금자리가 됐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진범씨는 2013년 논문 ‘한국 (반)지하 주거의 사회적 표상과 거주자의 정체성 연구’를 통해 “(반)지하에 관한 최초의 신문 보도가 나온 이래 2012년 12월까지 기사를 분석해보니 (반)지하에 관한 지배적 표상은 열악한 주거, 고립과 유폐, 절연의 공간, 빈곤과 범죄가 만나는 위험한 공간으로 요약된다”고 밝혔다.
반지하의 폐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1년 서울 폭우 피해가 반지하에 집중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실태조사와 대책이 논의됐지만 2022년에도 여전히 수십만 가구가 지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