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가 강력한 비바람을 몰고 경남 남해안에 도달했다. 북상하는 동안 힌남노 양쪽에 놓인 고기압이 태풍의 반시계 방향 회전을 도와줘 지치지 않고 ‘매우 강’의 강도로 한반도 근처까지 올라왔다. 힌남노는 6일 오전 8시쯤 동해상으로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어답게 중심기압 945h㎩ 안팎에 최대풍속 초속 45m의 바람과 함께 6일 오전 6시쯤 경남 통영시 인근에 상륙해 오전 8시쯤 포항을 지나 동해상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힌남노는 북위 43도를 지날 때까지도 ‘강’의 강도를 유지하다 7일 오전 3시쯤에야 일본 삿포로 서쪽 해상에서 온대저기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통 태풍은 북상하며 최성기를 지난 뒤 북위 30도 부근을 지나면서 서서히 약해진 채로 우리나라에 상륙한다. 위도가 높아질수록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고 주변 기압계 영향을 받으며 태풍이 에너지를 소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힌남노는 매우 이례적으로 북위 30도 부근을 지나며 더 강하게 발달했다.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높았고, 힌남노 양쪽에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위치해 태풍의 회전을 도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재난관리 종사자들에게 ‘선 조치 후 보고’를 강조했다.
초록색 민방위복을 입고 출근한 윤 대통령은 이날 도어스테핑(약식기자회견)에서 “(청사에서) 비상대기를 할 생각”이라며 “모든 국민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과 비공개 대통령수석비서관(대수비)회의, 국가위기관리센터 보고 등 하루 종일 힌남노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피해 최소화를 당부했다. 특히 태풍의 경로에 있는 부산과 경남·제주·울산의 광역단체장들과 통화하며 해안가 침수 사고 방지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6일 새벽까지 청사에 계속 머물 예정이다.
◆부산 빌딩풍·월파 우려 대피… 제주, 하늘길·뱃길 끊겨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속도를 높여 시시각각 북상한 5일 제주·남부 지역은 잔뜩 긴장한 채 만반의 대비를 갖췄다. 초고층 아파트 지역에서는 태풍이 몰고 올 강풍에 시름이 깊었다. 수확을 앞둔 과수원과 논밭, 가두리 양식장 등에서는 분주히 일손을 놀리며 조금이라도 피해가 줄기를 기원했다.
힌남노가 6일 오전 부산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자 부산 해안가 초고층 아파트 주변에서는 빌딩풍과 월파 가능성을 우려했다.
해운대해수욕장에 들어선 엘시티 주변의 미포항 상인들로 구성된 미포 발전협의회 관계자는 5일 “과거 큰 태풍 때는 엘시티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태풍으로 주변에 어떠한 피해가 발생할지 감이 오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힌남노보다 세력이 약한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때도 빌딩풍으로 마린시티 일대에 유리창이 깨졌다. 전문가들은 초속 40m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힌남노의 바람에 빌딩풍까지 더해지면 예상하기도 힘든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부산 해운대구는 월파 우려 지역에 있는 주민과 업주를 대상으로 이날 오후 6시부터 시행하는 대피 권고를 내렸다. 부산 회사들은 이날 조기 퇴근을 권고했고, 시민들은 일찌감치 귀가해 태풍 대비를 점검했다.
부산교통공사는 6일 오전 첫차부터 태풍 상황 해제 시까지 1∼4호선 지상구간 운행을 중단한다. 부산항도 이날 운영을 중단했다.
태풍의 길목에서 가장 먼저 힌남노를 맞닥뜨린 제주는 이날 하늘길과 바닷길이 모두 끊겨 완전히 고립됐다.
강한 비바람에 크고 작은 피해도 잇따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7시 40분쯤 서귀포시 중문동의 한 도로에 가로수가 쓰러져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낮 12시 7분쯤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에서는 한 주택 지붕 위로 인근의 나무가 쓰러졌다. 제주시 아라동과 이도동 도로에 있는 중앙분리대가 쓰러져 철거되기도 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포구에서는 정박해 있던 어선 1척이 침수됐다.
전날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에는 총 87건의 태풍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제주공항 출발·도착 항공편은 오후 2시 이후로 전편 결항해 하늘길이 끊겼다. 제주공항에서는 이날 운항 예정이던 항공편 142편 중 36편(출발 17, 도착 19)이 결항했으며, 320편은 사전에 결항이 결정됐다.
힌남노는 특히 만조 시간대와 태풍이 지나는 시간대가 겹쳐 우려를 키우고 있다. 힌남노는 6일 새벽 제주도에 최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 오전 5시 20분 서귀포시, 오전 5시 22분 성산포 등이 만조에 접어든다. 게다가 지난 사흘간 제주에 최고 450㎜가 넘는 비로 하천이 불어난 상황이라, 만조로 바닷물이 들어차면 범람 우려가 있다.
경남 창원시는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주민 156명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창원시는 저지대에 위치해 침수 위험이 있거나 산사태 피해가 우려되는 5개 구 주민에게 이날 12시를 기해 대피명령을 발령했다고 밝혔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안전을 위해 이날 오후 8시부터 6일 오후 3시까지 운행 예정 열차 중 317편을 운행중지했다. KTX의 경부, 경전, 동해, 호남, 전라, 중앙, 강릉선 열차 130편이 전구간 또는 동대구∼부산 구간을 운행하지 않는다.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는 경부, 경전, 동해남부, 영동·태백, 전라, 호남, 경북, 충북선 등 187편이 전구간 또는 일부 구간에서 운행하지 않는다. 동해선(부전∼태화강) 전동열차는 6일 첫차부터 오후 3시까지 상·하행선 59편 모두 운행이 중지될 예정이다.
농어민들도 태풍 대비로 마음을 졸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이날 농민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과수 나무에 일일이 받침대를 세워 지지력을 보강하고, 방풍망을 점검했다.
전국 최대 해상가두리 양식장 밀집지인 경남에서는 2003년 태풍 ‘매미’의 악몽이 재현될까 두려워했다. 당시 매미는 경남 앞바다 가두리 양식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통영시 등 각 지자체는 양식장 관리 인력을 전원 육지로 대피시키고 양식장 그물망·닻 등에 연결된 밧줄을 단단히 붙들어 맸다.
선박들은 항구로 대피했다. 이날 오전 5시를 기해 부산지역 어선 3515척을 비롯한 각종 선박이 피항을 마쳤다. 전북에서는 어선 3173척이 피항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여객선 72개 항로 99척이 운항 중단됐다. 해상 교량은 20곳이 통제됐거나 통제를 예고했다.
이날 북한은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 수문을 일부 개방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