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군사력에서 러시아보다 열세였던 우크라이나군은 예상을 깨고 러시아군의 공격을 저지했고,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는 반격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맞서 싸울 수 있는 배경에 대해 CNN 등 외신은 미군 특수작전부대가 개발한 저항작전개념(Resistance Operating Concept·ROC)을 지목한다.
◆총력전에 외부 지원·시민 참여까지 포함한 ‘비전통적 전쟁’
ROC는 작은 국가가 강대국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정규군 외에 민간인도 참여하며, 폭력적·비폭력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독일군 점령 직후에 만들어져 활동했다면, ROC는 전쟁 전에 정부와 군 주도로 저항조직을 사전에 만들고 장비를 은닉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저항조직이 적 점령지에서 정보수집, 사보타주(파괴공작), 심리전, 사이버전 등을 실시하며 정부와 군의 전쟁 수행을 돕는다.
ROC의 탄생 배경은 러시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하고 2014년 크름반도를 점령하자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을 포함한 동유럽 국가도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역외 영토이자 발트함대 본거지인 칼리닌그라드와 인접해 있고, 발트 3국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세계 최강 수준인 러시아의 군사력을 감안하면, 전통적 방식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미군 유럽특수작전사령부(SOCEUR)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의 정부 관계자, 학자, 군인 등이 모여 ROC의 개념을 구체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냉전 시절 스웨덴·스위스가 추구했던 방위전략 등을 참고했다.
구체적으로는 전쟁 전 특수전부대와 정규군에게 훈련받은 민간 무장조직이 유사시 적 점령지에서 게릴라전과 사보타주, 정보수집 등을 실시한다. 정부와 군은 이를 지원하면서 점령지 시민들에게 공개행사 보이콧, 파업을 비롯한 비폭력 저항, 화염병 투척이나 연료 탱크에 불을 지르는 등의 폭력 저항을 촉구한다.
ROC가 성공하려면 저항 조직이 독자적으로 1~2주 이상 군사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식량과 무기, 탄약은 적군에게서 빼앗을 수 있지만, 정부와 군의 지원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정상적 기능을 갖춘 정부와 군 조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기를 지원해줄 우방국의 존재도 빠질 수 없다. ROC를 만든 직후인 2020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회원국들에게 유사시 ROC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서 효과 입증, 인접국도 주목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침공 이전부터 ROC 적용을 위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7개월 전인 지난해 7월 민족적 저항 체제의 법적 근거인 ‘민족 저항의 기본에 관한 법률’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에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영토 방위군과 게릴라가 결성됐다. 영토 방위군은 정규군, 게릴라는 특수전 부대가 훈련을 담당했다. 특수전 요원들은 게릴라들이 유사시 쓸 무기를 은닉했다. SNS를 비롯한 민간 역량을 총동원해 비전통적 방식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체계도 마련했다. 미국도 특수전 요원들을 파견, 게릴라 훈련을 지원했다. 2014년부터 나토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국방개혁을 추진했던 것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전쟁 역량은 소리 없이 높아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 같은 준비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 등으로 거의 매일 항전 메시지를 냈다. 이를 통해 국민의 단결을 유지하고 서방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온라인에는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영상이 자주 등장했다. 러시아 장갑차를 화염병으로 공격하는 방법이 SNS에 카드뉴스로 소개되고, 재블린 등 대전차화기 조작법 영상이 유튜브에 등장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 점령지 거주민들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인식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특수전 부대에서 훈련받은 게릴라들은 점령지 곳곳에서 러시아군 장교나 협력자를 암살하고, 보급로를 파괴하며, 정보를 수집해 우크라이나 측에 넘겼다. 실제로 지난 13일 크름반도와 멜리토폴을 연결하는 철도가 게릴라의 습격으로 파괴됐다. 지난 5월에는 남부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에서 러시아군이 임명한 시장이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었고, 멜리토폴에서도 러시아군이 임명한 관리 한 명이 폭탄 공격을 받았다.
지난달 크름반도에서 발생한 러시아군 기지 폭발에 게릴라들이 관련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 예비역 육군 대령 케빈 스트링어는 CNN에 “전통적 방식으로는 그곳(크름반도)을 공격할 수 없으므로 특수전 부대를 이용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보, 자원, 보급 등 현지 저항세력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활동은 최전선에 배치될 러시아군 병력과 장비 규모를 축소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ROC가 효과를 거두자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등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리투아니아 의회는 지난 5월 기존보다 광범위한 시민 저항 전략을 채택했고, 에스토니아도 상비군과 민간 자원봉사 조직 간 연계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등 서방도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동유럽 국가의 안보를 지원하고 있어 ROC는 기존보다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