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펜션 통째로 내려앉아… 장갑차 동원 긴급 구조도 [남부 할퀸 ‘힌남노’]

포항·경주 등 큰 피해… 전쟁터 방불

500㎜ 가까운 폭우… 12명 사망·실종
포항, 1시간 동안 111㎜ 쏟아져 물바다
곳곳 침수 주민 대피… 산사태도 속출

부산 해안가 상가·도로도 쑥대밭으로
해일에 해안도로 아스팔트 뜯겨나가
1층 상가는 철재 뼈대만 앙상 ‘처참’

남해선 370년 수령 느티나무도 뽑혀
강풍에 전국 9만 가구 정전 피해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6일 짧고 강하게 한반도를 할퀴면서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500㎜ 가까운 폭우로 경북 포항·경주 곳곳이 침수되고 강풍으로 9만가구 가까이 정전 피해를 봤다. 태풍이 강타한 부산 해안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괴물 태풍’의 북상에 대비를 단단히 했음에도 힌남노는 전국에 크고 작은 상흔을 남겼다.

지반 유실로 ‘폭삭’ 6일 태풍 힌남노가 영남 지역을 강타하면서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있는 한 펜션이 강한 물살로 지반이 유실되는 바람에 하천으로 내려앉아 있다. 포항=연합뉴스

◆폭우에 12명 사망·실종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까지 집계된 힌남노 인명 피해는 사망 2명, 실종 10명이다. 포항에서는 이날 오전 6시부터 1시간 동안 111㎜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심 곳곳이 물에 잠기고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중대본에 따르면 3∼6일 누적 강우량은 경주 447.5㎜, 포항 418.2㎜에 달한다. 이날 오전 7시57분 포항 남구 오천읍 도로에서 남편과 대피소로 걸어가던 A(75)씨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됐고 오전 11시쯤 경주시 진현동의 한 주택에서는 80대 여성이 흙더미에 매몰돼 생을 달리했다. 포항에서는 아파트 2곳의 지하주차장에서 8명이 실종됐다.



새벽녘 폭우로 포항 곳곳이 침수되면서 주민들이 고립됐다 구조됐다. 이날 오전 3시41분 포항 남구 청림동 1∼7통이 침수됐고 연일읍·창포동 등 시내 곳곳에 물이 들어찼다. 청림동 일대가 침수되자 해병대 1사단은 구조를 위해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2대와 고무보트(IBS) 3대를 남부소방서에 배치했다.

“고립된 시민 구조하라”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침수 지역에서 해병대 1사단 장병들이 한국형상륙돌격장갑차(KAAV)를 투입해 민간인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해병대 사령부 제공

도로 역시 물에 잠겨 통행이 통제됐다. 포항 동해면·대송면·장기면 등 하천들도 범람하거나 범람 위기에 놓여 주민들이 긴급하게 몸을 피했다. 포항 북구·효곡동 등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했다. 경주에서도 이날 오전 6시3분께 내남면에서 하천 범람으로 주민 583명이 긴급 대피했다. 비슷한 시간 건천읍 송선 저수지 범람 위기로 주민 1800여명이 몸을 피했다. 포항 남구 한 펜션 건물은 이날 오전 주변 지반 유실로 기우뚱하게 내려앉았다.

◆통행 통제·정전 피해 속출

부산 해안가 상가와 도로는 쑥대밭이 됐다. 이날 오전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해안도로 100여는 아스팔트가 폭풍해일에 부서져 거북 등껍질처럼 떨어져 나갔다. 주변 인도와 상가 앞에는 1∼2m 크기 아스팔트 덩어리가 잔뜩 나뒹굴었다.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인근 상가들이 초토화됐다. 연합뉴스

해안가 1층 일부 상가들은 앙상하게 휘고 꺾인 철재 뼈대만 남았다. 2∼3층 상가도 강풍에 유리창 수십 장이 부서진 상태였다.

제주에는 정전 피해가 집중됐다. 강풍으로 고압선이 끊기면서 전날 오후 7시부터 이날 오전 11시까지 1만8053가구가 정전됐다. 한국전력은 힌남노로 이날 오후 3시까지 전국에서 199건의 정전이 발생해 8만9180가구가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이날 서귀포시 서귀포항에서는 식당 냉장고가 날아간 채 발견됐고, 강정항에서는 어선 1척이 전복됐다.

서해안에서도 강풍 피해가 잇따랐다. 밤사이 충남 태안군 내포항에서 4t 어선이 유실됐고 4.6t 어선 1척이 침수 피해를 당했다. 충남 안면읍 황도항에서 0.67t 어선 1척도 침수됐다.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부산 송도해수욕장 해변도로에는 해일피해를 입은 상가에서 나온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연합뉴스

경남 남해군에서는 삼동면 물건리 은점마을에 있는 37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강풍에 밑동이 뽑혀 쓰러졌고, 인근 정자 쉼터도 날아갔다. 이 느티나무는 높이 19, 둘레 5.9로 2001년 경남도가 보호수로 지정했다. 중대본에 따르면 힌남노로 2143가구 2909명이 일시 대피했으며, 침수되거나 쓰러지고 낙과한 농작물은 총 1320㏊였다.

◆수도권 출근길 대란은 피해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오전 시간대 서울 시내 주요 도로가 통제됐지만, 우려했던 ‘출근길 대란’은 없었다. 상당수 직장인들이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에 오른 데다 일부 기업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거나 출근 시간을 늦춘 영향이다. 서울 광진구에서 강남구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서모(37)씨는 “시내버스가 강남 지역을 우회하는 바람에 동료들이 30분 이상 늦게 출근했다”고 전했다.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서울 시내 도로 곳곳이 통제된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방역 1호선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한강 수위 상승으로 서울 곳곳 도로가 통제되면서 도로에서는 혼잡이 일었다. 경기 성남시에서 서울로 버스를 타고 출근한 임모(25)씨는 “서울에 들어오니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30분은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고 토로했다. 송모(30)씨도 “올림픽대로가 통제돼서 우회해 출근하다 보니 1시간을 지각했다”며 “10분 일찍 나오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늦을 줄 몰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