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아들을 먼저 저세상 보내놓고 나만 살다니 가슴이 찢어집니다.”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경북 포항 남구 인덕동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모(52)씨는 7일 아들 김군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김군을 포함해 지하주차장 침수사고 희생자들의 빈소는 이날 내내 무거운 슬픔에 잠겼다.
전날 밤 이웃들은 김군의 모친이 구조되자 손뼉을 치며 기뻐했으나 이내 김군의 소식을 접하고는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구조 현장을 목격한 주민 이모(45)씨는 “6일 오후 9시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김씨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뒤 같이 차를 빼러 갔다가 실종된 중학생 아들 김군의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있어 가슴이 저리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제 아들이 엄마를 도와주러 함께 주차장으로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런 비보에 주민들의 상심이 매우 크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씨는 “차를 빼러 갔을 당시 지하 주차장 바닥에는 발목 정도밖에 물이 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10분 뒤 순식간에 물이 밀려들면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군의 사망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이날 빈소가 마련된 포항의료원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슬픔에 잠긴 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빈소에서 만난 학생들은 평소 김군이 친구들을 웃게 해주는 재미있고 착한 친구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여서 자주 놀러 다녔는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빈소를 찾은 학교 관계자는 “어제 하루 내내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됐는데 오늘 아침에 가족들로부터 슬픈 소식을 들었다”며 “학생 대표와 선생님들이 조문을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조대 한 관계자는 “김군이 탈출을 시도하려다 끝내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갑작스럽게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의 빈자리가 믿기지 않는 듯 유족들은 허공을 응시하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지하 주차장 침수 사태와 관련해 노부부가 동시에 목숨을 잃은 또 다른 안타까운 사연이 주위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
이날 포항의료원에 빈소가 마련된 영정 속에는 전날 우방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로 숨진 A(72)씨 부부가 다정한 모습으로 앞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족이 함께 모여 장례 일정 등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간혹 울음소리만 새어 나오던 조문실은 제단 위에 꽃장식이 마련되고, 영정사진이 올라오자 한순간 울음바다로 변했다. 노부부는 전날 ‘지하주차장의 차량을 이동하라’는 방송을 듣고 함께 지하로 갔다가 변을 당했다.
평소 효자로 소문난 한 가정의 가장도 목숨을 잃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숨진 B(53)씨의 포항의료원 빈소는 이날 오전 아들을 잃은 노모(75)와 B씨의 여동생이 지키고 있었다. 지하주차장 차를 빼고 오겠다며 나간 맏아들이 주검이 돼 돌아온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모는 앉아 있을 힘조차 없어 보였다.
삼남매의 맏이인 B씨는 20년 전 쯤부터 침수사고가 난 아파트에서 모친을 모시고 살 정도로 효자라는 게 인근 주민들의 전언이다.
B씨의 어머니는 “아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갔지만 배수 작업이 조금이라도 빨랐으면 어떠했겠냐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그는 “침수 30분 전쯤 관리실에 전화해서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를 옮겨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괜찮다’고 하더니 곧이어 차량을 옮기라는 방송이 나왔고, 아들이 주차장으로 간 것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