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임기의 국회의원들은 전반기 때보다 후반기 의정활동을 지역구 관리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22대 국회에서 재선에 도전하려면 지역구를 새로 개척해야 한다. 다음 총선까지 17개월 앞둔 현재 일부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은 스스로 지역을 택해 밭을 일구는 작업에 돌입했다.
◆추석 앞두고 지역 골라 민생 행보 나선 여야 의원들
청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지난 7월 경기도 화성시로 이사했다. 동탄신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화성은 활력이 도는 도시다.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가 하나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큰 편이다. 전 의원은 지난달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 화성 동탄에서 벌이는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거리에서 ‘찾아가는 민원상담실’을 열고, 추석을 앞두고 출근길 인사도 주민들과 나눴다. 전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거리에 나서 동탄 주민들을 찾아뵈었다”며 “버스정류장에서, 기흥IC에서, 동탄역에서, 지나가시는 곳 어디서건 마주뵙고 인사드렸다. 알아도 봐주시고 응원의 말씀주신 시민분들 덕분에 더욱 힘이 났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애인 비례대표 출신의 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최근 경기도 안성시에 터를 잡았다. 이곳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이규민 전 의원이 승리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지금은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의 지역구가 됐다. 최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안성시민 한 사람으로서, 또 안성지역에 살고있는 국회의원으로서 모두가 살기 좋은 안성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국민의힘에서는 초선 비례대표 조수진 의원이 일찌감치 서울 양천갑 당협위원장직을 꿰찼다. 이 지역 현역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황희 의원이다. 지역에 걸린 현수막만 보면 누가 현역 지역구 의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조 의원과 황 의원의 ‘현수막 정치’는 목동에서 쌍벽을 이룬다. 조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목4동 목사랑시장과 목3동 깨비시장. 북적이는 골목, 치~하는 전 부치는 소리와 냄새도 좋고, 여기저기서 반겨주시는 정겨움도 좋다”면서 추석을 앞두고 지역구 전통시장에서 장을 본 소감을 남겼다.
◆20대 국회 비례 중 21대 국회 생환 재선은 5명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를 일찍 택해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일은 관례화 됐다. 의원 타이틀을 달고 지역구에 가면 현역 지역구 의원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역 예산 확보 등 지역구 의원 못지 않게 국회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건 장점이다.
다만, 비례 출신은 ‘험지’로 가야한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에 지역구 선정부터 쉬운 작업은 아니다.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역구 동료 의원들과 이런 문제로 상담을 하면 일단 견제를 하는 분위기”라며 “지역을 고를 때 우선 해당 지역구가 상대당 의원이 현역인 곳이 좋고, 그 다음엔 분구가 돼 지역구가 하나 더 생기는 곳을 찾는 곳이 그나마 공천 받을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공천을 받더라도 당선되기는 더 험난하다. ‘보수 텃밭’ 서울 서초을에서 비례대표 시절부터 지역을 다졌던 박경미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에게 석패했다. 경북 구미을에 출마했던 비례 출신 민주당 김현권 전 의원 역시 고배를 마셨다.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중 21대 총선 당시 ‘생환’한 의원은 5명이다. 민주당에서는 이재정·정춘숙·송옥주 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임이자 의원이 지역구 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국민의당 출신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은 2연속 비례대표로 배지를 단 근래 보기드문 사례를 만들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다음 총선까지 아직 시간이 꽤 남은 편이어서 다음 총선 공천이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그렇더라도 비례대표 의원들은 당의 ‘혜택’을 입었으니 ‘험지 출마’로 ‘선당후사’하는 자세가 마땅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