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이 12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성(聖) 자일스 대성당에서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스코틀랜드는 2014년부터 분리독립 움직임이 본격화한 곳이지만, 이날만큼은 독립이나 군주제에 관한 복잡한 심경 표출을 자제한 채 스코틀랜드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고인을 차분히 추모하는 분위기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들은 전했다.
열흘간의 장례 일정 중 사흘째인 이날, 샌드위치와 간이 의자 등을 준비해온 일반인 조문객이 대성당에 운집해 여왕과의 작별 인사 차례를 기다렸다. 앞서 새 국왕 찰스 3세 등 고인의 네 자녀가 이끄는 운구 행렬이 로열마일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스코틀랜드 왕기로 덮인 여왕의 관은 대성당 한가운데 관대 위로 옮겨진 뒤 추도 예배를 거쳐 24시간 동안 일반에 공개됐다.
스코틀랜드교회 이언 그린실즈 총회장은 여왕이 밸모럴성에 머물 때 많은 이들의 “이웃이자 친구였다”며 “여왕이 우리 땅, 이곳 주민과 깊은 유대를 가졌다는 것을 감사히 여긴다”고 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밸모럴성은 여왕의 여름 휴가지로, 여왕은 지난 8일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밖에서 몇 시간 동안 차례를 기다린 일반인 추모객은 고개를 숙여 묵념하거나 눈물을 훔치며 여왕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스코틀랜드 북부의 유대계 학교 고든스타운 출신인 찰스 3세는 이날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인 킬트 차림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의회 연설에서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언덕과 사람들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며 “어머니는 나처럼 스코틀랜드인들의 장엄한 업적과 불굴의 정신에 가장 큰 존경심을 느껴왔다”고 밝혔다. 분리독립 움직임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내년 10월 분리독립 투표 추진을 공식화했던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여왕을 “조국의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라고 칭하며 찰스 3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여왕의 시신은 13일 런던 버킹엄궁으로 이동한 뒤 14일 웨스터민스터 홀로 옮겨져 나흘간 대중에 공개된다. 19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정상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세기의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다. 경호·보안에 비상이 걸린 영국 정부가 “공항 혼잡을 피하기 위해 각국 정상·왕족도 전용기가 아닌 민항기로 입국하라. 장례식장까지는 버스로 이동하라”는 내용으로 작성한 문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국 총리 대변인은 해당 문서가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며 수습에 나섰다.
영국 타임스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용차량인 ‘비스트’를 이용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게 될 것”이라며 “주요 7개국(G7) 정상들에게 버스를 타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겠지만, 다른 고위 참석자들에겐 가능한 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G7 정상들과 비공식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 타임스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