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그리고 예고된 악재… 물가·주가·금리의 악몽 [뉴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8.3%…시장 예상 넘어
에너지·식품 제외 지수 전월 대비 두 배로 ‘껑충’
이달 기준금리 75bp 인상 유력…100bp 예상도
“급격한 금리인상, 경기·증시 침체 장기화 우려”
한국도 예외 아냐… 물가상승에 금리인상 유력

주식 투자자들이 탄식하고 있다. 잠시나마 가졌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고, 예고된 금리 인상이 또 다른 악재로 다가오고 있다. 투자자들뿐만이 아니다. 잡히지 않는 물가와 늘어나는 대출 이자는 주식 투자에 무심한 이들의 얼굴마저 그늘지게 하고 있다. 오르는 물가와 떨어지는 주가, 금리 인상이 경제를 흔들고 있다.


◆인플레이션 장기화 공포에 증시 폭락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고점이 지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지 모른다’던 시장의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13일(현지시간) 나스닥은 5.16% 폭락했다. 여기에 이달 Fed의 금리인상 폭이 1%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날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276.37포인트(3.94%) 떨어진 31104.9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77.72포인트(4.32%) 폭락한 3932.69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632.84포인트(5.16%) 폭락한 11633.57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AP뉴시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3대 지수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6월 11일 이후 2년3개월 만에 하루 최대폭 하락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 이후 급락하다 지난 6일 이후 반등하던 뉴욕증시는 하루 만에 일주일 치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S&P 500 기업 중 490곳 이상의 주가가 이날 떨어질 정도로 하락세가 광범위했다고 CNBC방송은 전했다.

개장 직전 발표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결과가 뉴욕증시를 강타했다. 국내 서학개미들이 투자 상위 종목인 3배수 상장지수펀드(ETF)인 TQQQ는 이날만 16.46%, SOXL은 18.2%가 떨어졌다. 투자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숫자다. 

 

지난달 CPI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월보다 8.3% 올라 시장 전망치(8.0%)를 크게 상회, 투자자들에게 인플레이션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고 더오래 갈 수밖에 없다는 상황 인식을 심어준 영향이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보다 6.3%, 전월보다 0.6% 각각 오른 것이 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사진=AP연합뉴스

연준이 주목하는 이 지표의 전월 대비 상승률이 7월(0.3%)의 두 배로 치솟았다는 소식은 더욱 큰 폭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미 제롬 파월 의장의 지난달 말 잭슨홀 심포지엄 연설을 시작으로 연준 고위 인사들은 잇따라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 가운데 물가상승 지표까지 최악의 상황을 나타내자 9월(20∼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3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은 확정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기준금리 선물시장의 투자자들은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9월 0.75%포인트 금리인상 확률을 86%로, 그보다 낮은 0.5%포인트 금리인상 확률을 14%로 각각 예상했다. 하지만 8월 CPI 발표 후 0.5%포인트 가능성은 ‘제로’(0)가 됐다.

 

◆‘자이언트 스텝’ 넘은 ‘1%p 금리인상’ 전망도

 

시장에선 0.75%포인트가 아닌 1%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까지 급부상했다. 투자자들의 금리 전망에서 ‘1%포인트 인상’ 확률은 전날까지 0에 가까웠지만 CPI 발표 후 30%대로 치솟았다. 

 

일본 투자은행 노무라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견고한지, 연준의 대응 규모가 얼마나 될지를 시장은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며 9월 기준금리 인상폭 전망치를 1%포인트로 상향 조정했다.

사진=AP연합뉴스

KPMG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는 WSJ에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 더 오래가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것이 더 우려할 만한 인플레이션”이라며 “수요가 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는 점을 연준은 우려하고 있다. 이날CPI 보고서는 악몽과 같고 1%포인트 인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고 말했다.

 

빈 캐피털의 채권전략책임자인 스캇 부흐타는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해야 한다면 신속하게 인상하고 극복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며 “75bp(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100bp는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연준이 1990년대 초 기준금리를 통화정책 조정을 위한 주요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한꺼번에 1%포인트의 금리인상을 단행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금융시장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번 금리인상기에서 최종적으로 도달할 금리 수준에 대한 관측도 상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최근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를 포함한 다수의 연준 인사들이 현재 2.25∼2.5%의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4%에 가깝게 올릴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8월 CPI 발표 후 최종금리가 4.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은행 제퍼리스의 아네타 마코스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으로부터 최종 금리를 4%에서 4.5% 또는 그 이상의 수준을 향해 빠르게 바꿀 것이라는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EPA연합뉴스

이처럼 급격한 금리인상이 결국 미국의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옴에 따라 증시 침체도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윌밍턴트러스터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루크 틸리는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아직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심지어 숲의 끝이 어디인지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충격파… 금리 인상, 투자 위축 불가피

 

이러한 미국 상황은 한국에도 즉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증시는 14일 큰 폭의 하락세로 출발했다. 코스피는 오전 11시10분 현재 전 거래일보다 35.70포인트(1.46%) 내린 2414.36, 코스닥은 13.98포인트(1.76%) 내린 782.83을 기록했다. 원 달러 환율은 같은 시각 1391원으로 전날보다 17.40원 오르며 1400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국내 물가 상황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리온은 초코파이 가격을 12.4%, 포카칩은 12.3%를 올리기로 했고, 농심도 15일부터 라면 가격을 11.3% 올린다. 우유도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1% 떨어졌지만, 전년 동기대비로는 5.7% 오르며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큰 폭의 미국 금리 인상이 확실시 되는 상황인만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역시 불가피해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 달 12일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예정으로, 현재 기준금리는 2.50%다. 통상 한은은 0.25%p씩 금리를 올렸지만, 올해들어 이미 그 전례를 깼고, 최근의 물가와 환율 등을 감안했을 때, 0.5%p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지만,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다. 물가를 잡아도, 이자 부담에 서민의 고통은 가중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규모는 1757조9000억원으로 이 중 변동금리 비중이 78.4%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