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8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8일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이후 영국은 어떻게 변했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더 적은 아이들, 더 적은 광부, 더 적은 양의 양배추’를 키워드로 꼽았습니다. 출산율이 낮아져 자연히 고령층의 비중이 늘고, 육류 소비가 늘며 감자와 양배추 소비는 5분의 1∼6분의 1로 줄었다는 거죠. ‘더 적은 광부’는 지난 70년간 영국 사회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석탄 시대’의 문을 처음으로 연 나라입니다. 처음으로 걱정스러울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그런 영국이 2017년 4월22일 석탄 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에 첫 점화가 있은 지 130여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현재 영국의 발전소와 공장에서 쓰는 석탄의 양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나온 1769년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석탄 시대에 진입한 것도, 가장 먼저 탈출한 것도 영국이었던 거죠.
‘영국 그 자체’였던 여왕의 죽음에 맞물려 산업혁명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왕실의 온실가스 이야기를 정리해봤습니다.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연 산업혁명
중세시대만 해도 유럽의 비주류였던 영국은 17세기가 되면서 세계의 종주국이 됩니다. 도서지역까지 합쳐 58곳의 식민지를 거느린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죠. 대영제국의 위치를 더욱 공고하게 다진 건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나오고, 수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이나 터빈을 움직여 동력을 얻는 증기기관이 나온 겁니다.
‘우리 문명은 우리가 깨닫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석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기계들과 기계를 만드는 기계들은 모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서방세계의 신진대사에서 광부는 땅을 경작하는 농부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37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당시 석탄에 의존했던 영국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1930년대 석탄은 100만명 이상을 고용한 가장 큰 단일산업이었습니다. 책에 따르면 탄광에 고용된 광부 한 사람이 1934년 생산한 석탄은 280t에 이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석탄 생산이 줄었던 건 광부들의 파업이 있던 1921년과 1926년뿐이었죠.
화석연료 사용엔 대가가 따릅니다. 아직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시절, 대기 질에서 빨간불이 켜집니다. 여왕 즉위 첫해인 1952년 12월 런던에 닷새 동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스모그가 내려앉습니다. 악명 높은 ‘런던스모그’죠. 최대 10만명이 기관지염, 폐렴 등 각종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합니다.
대기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한 영국은 1956년 ‘대기청정법’을 제정합니다. 연료로 석탄 대신 가스나 전기를 쓰도록 권장했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이 해 석탄 사용량은 2억1000만t으로 최대치를 찍습니다.
하지만 석탄이 1인자로 군림하던 시대는 서서히 끝나갑니다. 1968년 8월11일 석탄으로 달리던 증기 기관차가 마지막 운행을 마쳤고 디젤과 전기 열차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석탄보다 디젤이 훨씬 힘도 좋고, 효율도 높았거든요. 또 원자력발전소도 하나둘 생겨났죠. 제본스의 예상과 반대로 석탄은 퇴장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죠.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71년 6억6000만t까지 늘어났다가 서서히 줄어들게 됩니다.
◆석탄과 결별하다
추락하는 것엔 대체로 날개가 없습니다. 1970년 1억6000만t에 달했던 영국 석탄 소비량은 10년 새 20% 줄어듭니다. 바꿔 말하면 영국 경제의 대들보였던 석탄산업 종사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게 됐습니다.
한때 영국에서 가장 막강한 노동조합이었던 전국광부노조(NUM)는 1984년 대대적인 파업을 벌입니다. 당시만 해도 전기의 70%를 석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믿었죠. 하지만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파업은 1년 만에 실패로 끝납니다. 1980년 중반 이후 석탄 소비는 더 빠르게 줄어듭니다.
그리고 2000년대.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경고등을 켜기 시작했고, 200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법을 만들었습니다. 법적구속력을 가진 감축목표를 설정할 것, 탄소예산제를 수립할 것, 독립적인 기후변화위원회를 세울 것 등이 담겼습니다. 오늘날 한국과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도 유사한 내용의 법을 시행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선구적인 법이라 할만 합니다.
우리의 산업통상자원부 격인 영국 사업·에너지·산업전략부의 집계에서 영국은 지난해 730만t의 석탄을 썼습니다. 1700년대 후반의 연간 사용량과 비슷하죠. 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 이후 46% 줄었고,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빅토리아 여왕(1837∼1901 재위) 시절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현재 영국의 전기는 36%는 가스로, 31%는 태양광이나 풍력, 수력으로, 16%는 원자력으로 만듭니다. 석탄이 차지하는 몫은 2%도 안 되죠.
영국 왕실도 최근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난해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보도를 보면, 여왕이 보유한 닛산, 르노 트위지, BMW i3와 하이브리드 7 시리즈는 모두 전기차 혹은 하이브리드입니다. 찰스 3세도 재규어 I페이스 등 친환경차 여러 대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죠.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난 여왕의 남편 필립공의 운구차량도 하이브리드였다고 합니다. 왕실은 전용 열차도 있는데요, 이 또한 디젤·전기 하이브리드입니다.
여왕이 안장될 윈저성은 전력의 40%를 템스강 수력발전으로 얻고요. 물론, 이들의 생활 스케일이 남다른 만큼 왕실의 절대적인 배출량은 보통 국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에코엑스퍼츠라고 하는 영국 환경단체가 지난 7월 왕실이 펴낸 출장 기록, 에너지 사용량 등을 토대로 계산한 걸 보면 2019년 왕실은 총 3810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습니다. 이 가운데 11%는 찰스 3세 왕 부부가 전용기, 헬기 등으로 타고 다니며 뿜은 것이죠. 영국 국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5t 정도 됩니다.
에너지 위기를 맞아 영국도 최근 기로에 섰습니다. 전력 생산에서 석탄을 줄인 만큼 가스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됐는데요, 덕분에 온실가스는 줄었지만 가스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자 직격탄을 맞게 됐습니다.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다음달로 예정된 가정용 전기·가스요금 80% 인상을 취소하고, 요금 동결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북해 시추 제한을 푸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사업·에너지·사업전략부 신임 장관에 ‘화석연료 애호가’인 제이컵 리스 모그를 앉히기도 했죠. 그는 과거 “기후변화에 대한 야단법석이 높은 에너지 가격의 원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날씨 예측도 어려운데 기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죠.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당사국 총회(COP26)를 맞아 여왕은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저는 이번 회의가 ‘현재의 정치’를 넘어 미래를 위한 진정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가 당신을 ‘기회를 놓치지 않은 지도자’로 묘사하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녀, 자녀의 자녀를 위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석탄 시대의 문을 제일 먼저 여닫고, 최초로 기후변화법을 만든 영국이 이번 에너지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