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20대 여성 역무원은 경찰에 스토킹으로 가해자를 고소했던 직후를 제외하면 별다른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신변보호 대상 여성이나 그 가족을 살해한 김병찬(35), 이석준(25) 사건 이후 여러 제도 개선책이 쏟아졌지만 피해자의 불원 의사 한 번이면 모든 제도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10개월 뒤 전씨가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했던 셈이다.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불구속 상태애서 재판을 받아오던 전씨는 일회용 승차권을 이용해 신당역으로 이동한 뒤 화장실 앞에서 1시간 넘게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미리 준비해놓은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당시 일회용 위생모를 쓰고 있었고, 경찰 조사에서는 오래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원하지 않는데 경찰이 강제할 순 없다"며 "위험도가 높으면 조처를 할 것을 권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스토킹 가해자 감시하는 제도로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스토킹 피해자들이 보호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토킹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나오는 제도 개선책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결국 피해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7월 발표한 120대 국정과제에서 스토킹 범죄, 권력형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등을 5대 폭력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송혜미 변호사는 "보호조치가 신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가해자들도 잘 알고 있고 '취소하지 않으면 가족한테 찾아갈 거야'라고 협박하는 등 악용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며 "이번 피해자도 그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피해자 입장에선 보호 조치를 받더라도 100% 안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가해자의 폭언과 협박이 더 크게 느껴진다"며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거부하더라도 심리상담 등을 통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상담을 병행해서 피해자가 어느 정도 가해자의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며 "경찰, 여성가족부, 민간 상담센터 등 피해자 상담을 위한 기관 연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 보호가 피해자의 신고에 의존하고 있다"며 "스토커에게 전자발찌를 채운 뒤 피해자 근처에 접근하면 바로 알 수 있게끔 법무부나 경찰청이 정보를 통합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선진국 중에선 재판 전에도 가해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전자 감시를 하는 곳이 있다"며 "피해자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신당역 화장실 범행 현장 앞에는 시민들의 추모 꽃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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