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법, 인플레 감축법, 바이오 이니셔티브 등 첨단산업 전략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그 성격, 영향, 대응 방향에 대한 논의가 봇물을 이룬다. 그런데 우리가 미·중 대결에 초점을 맞춰 어디에 줄을 설 것인가 중심으로 대응을 모색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주목해야 할 점은 산업을 대하는 선진국의 태도가 180도 변했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연구개발(R&D) 등 혁신 사이클의 앞부분에 특화하고 제조와 생산은 아시아 국가들에 아웃소싱하던 수직분업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작금의 미국 산업정책 입법은 혁신은 물론 제조와 생산을 아우르는 혁신 생태계와 공급망 전체를 자국 내에 완결한다는 제조와 생산 중심 태도로의 전환을 뜻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물론 정책 당국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이 제조와 생산에 중립적 태도를 취했던 시기 우리나라 산업은 중국의 추격을 우려하면서 좀 더 빨리 앞으로 나가는 데 집중했지만 이젠 선진국과의 경쟁에도 직면하게 됐다. 첨단산업의 경쟁 양상이 기업 대항전에서 국가 대항전으로 바뀌는 것이다. 신흥 개도국에서나 실행하던 산업정책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대규모 재정 투자를 동반하는 방식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첨단산업 경쟁 격화에 대응하려면 지난 세계화 시대와 전혀 다른 국가 산업전략이 요청된다. 한마디로 ‘원팀 코리아’로 불리는 민간과 정부의 협력, 정부 부처 간 협력이 향후 절실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 컨트롤타워를 강력하게 재정비해야만 한다. 현대 산업은 여러 관련 제품이 결합된 시스템적 성격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는 곧 관련 정책을 관할하는 정부 부처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전 관행에 익숙한 관련 부처들이 혁신 요구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부처 간 칸막이 현상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회색지대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정책 추진의 신속성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원팀 코리아’는 민관이 긴밀히 협력하는 한편 부처 간 조정과 협력을 위한 컨트롤타워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세·무역·투자 등 관련 정책을 조정하는 미션 중심의 효과적 실행 체계가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