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기업승계 활성화를 위해 신탁제도와 공익재단법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적인 입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무법인 바른 자산관리그룹 조웅규 변호사(사법연수원 41기)는 15일 바른빌딩에서 열린 제80회 상속신탁연구회 세미나에서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한 상속제도와 상속세제 검토’ 발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기업승계를 위한 제도로 유언상속과 법정상속 그리고 유류분제도가 있다. 법정상속의 경우 상속재산분할 협의 등을 통해 특정인을 후계자로 인정하고 회사 주식을 몰아주는 게 가능하지만, 상속인들간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다 기업 지배권을 확보할 정도의 주식취득을 위해선 상당한 보상이 따라야 해 경영권분쟁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 유언상속은 창업주의 유언으로 상속재산을 받을 자를 정할 수 있지만, 우리 법원은 법으로 정한 사항에 한해 법이 정한 방식으로만 효력을 인정하고 있어 분쟁가능성이 높은데다, 유언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어 창업주 사망전까지 불확정한 법률상태가 지속된다는 문제가 있다.
유류분의 경우 기업을 승계할 후계자로 지목된 상속인은 나머지 상속인들의 유류분 합계 상당을 제외한 주식만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상속 증여세 재원확보를 위해 회사주식 상당수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유류분 문제가 갖는 심각성은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 민법은 피상속인 의사와 무관하게 상속인에게 법정상속분의 1/2 내지 1/3을 유류분으로 인정해 유류분이 부족할 경우 부족한 한도에서 재산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세제의 경우 최고 50%에 달하는 과도한 상속세율(할증시 60%)과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세율을 결정하는 유산세 방식이라 실제 부담하는 세금이 늘어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과도한 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도입해 운영중이지만 사전요건을 충죽하지 못하거나 엄격한 사후 이행요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이용을 꺼리고 있다. 지난7월 정부가 내놓은 세제개편안(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 및 공제한도를 확대하고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하는)은 업계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한 면이 있다. 제도의 한계와 높은 세율과 함께 가족에로의 기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하는 부정적인 시각도 기업승계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꼽힌다.
조웅규 변호사는 “현행 상속제도는 후계자를 지정하고 기업 지분 내지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어렵고, 지나치게 과도한 상속세금을 부담해야 해 기업 규모와 가치를 유지한 채 승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제도와 세제개편은 물론 기업승계 활성화를 위해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변호사가 주목하는 기업승계 활성화를 위한 대안은 신탁제도와 공익법인 활용이다. 현 제도권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인데, 몇가지 제한적 요소를 입법적으로 보완한다면 꽉 막힌 기업승계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기업에서 후계자가 기업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주총 등에서 의사결정권한을 가지는 게 관건인데, 이를 위해선 상당한 수의 주식을 후계자에게 넘겨야 한다. 그런데 후계자가 기업지배권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주식을 생전증여 등으로 취득하는 데 나머지 상속인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유류분 반환청구 등 경영권분쟁이 불가피하게 된다. 그런데 신탁의 전환기능을 활용하면 주식을 후계자에게 집중시키지 않고도 나머지 상속인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게 가능해진다. 설령 나머지 상속인들이 상속재산 분배 결과에 불만을 가지더라도 유류분 침해가 발생하지 않아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조변호사는 “기업승계를 위해 신탁을 활용하게 되면 주식을 의결권과 이익으로 구분해 각각 수익권 대상으로 정한 후 의결권은 수탁자가 의결권행사 지시권 형태로, 이익은 배당이익 수령권 형태로 분리할 수 있다. 창업주 상속재산 중 주식 비율이 절대적이라 하더라도 모든 상속인들이 수익권을 받았기 때문에 유류분 침해가 없어 유류분 분쟁 원인을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신탁을 기업승계에 활용할 경우 ① 위탁자인 창업주의 주식을 수탁자가 보유하게 돼 주식분산을 방지할 수 있고, ② 창업주가 생존해 있는 동안 수익자를 창업주로 하면 기업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고, ③ 창업주의 갑작스런 유고시에도 공백 없이 신속하게 후계자에게 경영권이전이 가능하고, ④ 유언이 아니므로 후계자 지정을 둘러싼 다툼을 상당부분 피해갈 수 있다.
다만, 기업승계를 목적으로 한 주식신탁의 경우 수탁자가 신탁업자 이더라도 수탁자의 의결권 행사가 위탁자나 수익자 지시에 따라 이뤄지는 때에는 자본시장법 제 112조 제3항 제1호 의결권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법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주식신탁의 경우 피상속인이 보유하던 주식이 수탁자에게 완전히 이전되므로 사전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신탁을 활용한 기업승계를 포기하게 될 우려가 있는 만큼 명확한 입법이 필요하다.
공익재단법인을 활용하는 경우, 창업주의 주식 일부를 공익재단에 출연하게 되면 세금부담이 거의 없어 상속세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공익에 기여하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폭스바겐 그룹, 베텔스만 그룹, 보쉬그룹 등이 공익재단에 재산을 출연하고 기업을 승계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런데 우리 법제상 기업재단법인은 공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익적인 목적으로 남용돼 적극적인 규제와 감시 대상이 되어왔다. 주식취득과 보유에서 제한을 둔다거나, 운용상의 제한, 의결권행사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그간 공익재단법인은 주식취득 및 보유에 제한이 있어 이를 통한 기업승계는 보조적 수단으로 머물러왔고, 의결권 없는 주식의 경우 위와 같은 제한을 받지 않지만 25% 이상 발행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조변호사는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승계는 상속세를 절감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유익한 방안이다. 사익적 남용에 따른 규제는 대기업집단에 국한하고 중견 중소기업에게 동일한 잣대로 규제할 필요는 없다”며 “중견 중소기업은 주식취득 및 보유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 내지 폐지하고, 출연된 주식이 실제로 공익활동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공익법인 활동에 관한 감독 및 사후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방식으로 법개정을 해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른 상속신탁연구회(회장 조웅규 변호사)는 2012년 발족된 국내 로펌 유일의 상속 신탁 연구모임으로 가사·상속, 신탁, 가업승계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