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갈등이 격해질 때마다 완화하거나 중재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해온 한일의원연맹은 한·일 관계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일의원연맹은 일한의원연맹과의 제43차 합동 총회를 10∼11월 중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회의뿐 아니라 4년 만에 양국 의원 간 친선 축구경기도 재개된다. 윤석열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노력 못지않게 국회에서의 한일의원연맹 역할도 부각되고 있다.
◆국회 내 최다 의원 소속된 의회외교단체
◆냉전 시기 안보·경제·과거사 문제 해결 앞장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한일의원연맹의 역할이 절정에 이르던 때는 냉전 시기다.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최준영 교수는 논문 ‘갈등 속의 한일관계와 한일의원연맹의 역할’에서 “한일의원연맹은 냉전 기간 안보와 경제, 그리고 과거사 문제에서 양국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적었다. 논문에서는 제5공화국 출범 후 권익현 당시 연맹 회장을 필두로 성공적인 대일 차관협상을 끌어냈고, 88올림픽 지원을 위한 재일교포의 성금에 대한 면세 조치를 일한의원연맹과의 협상을 통해 성사시켰다고 했다. 이러한 일들은 미국이 공산권 국가의 동아시아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협력적 관계를 끊임없이 종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탈냉전기 들어서는 안보 이슈가 상대적으로 사그라지면서 냉전 시기 긴밀했던 때보다 유대가 느슨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대신 수면 위 활동을 통해 친선교류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세계일보 통화에서 “군사정권까지는 주로 ‘밀실외교’를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며 “민주화가 진척된 뒤에는 공개적인 친선교류가 많아졌다. 대표단이 양국을 오갈 때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일본 측 의원단을 만나고, 우리도 갔을 때 일본 총리를 만나고 오는 게 관례화됐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정치인들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해야
정치권에서 일본이 언급될 때마다 가장 많이 소환되는 사건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합의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한·일 정상은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열어간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커다란 고통을 준 사실을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정진석 회장은 지난 15일 제주포럼에서 진행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세션에서 “양국 정상의 선언에 담긴 정신과 원칙을 차분하게 되짚어봐야 한다”며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하고, 한쪽에 해법을 마련하라고만 주장하는 것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웅변했다.
지난달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워싱턴에서 미·일 의원들과 만나고 온 한일의원연맹 김한정 상임간사(민주당)는 기자와 만나 “일본의 젊은 의원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일한의원연맹의 자민당 원로 정치인과는 달랐다”며 “우리 쪽 이야기를 경청하고 역사·화해·미래지향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와는 달리 이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하거나 우리한테 제안하려는 입장까지는 못 나가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과거사 문제 등 갈등이 있을수록 피하지 말고 양국 의원들이 더 소통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강 전 대사는 통화에서 “일본의 30·40대 의원들은 윗세대와 달리 양국을 대등하게 생각한다”며 “젊은 의원들을 자꾸 초청해서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