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대부분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가해자를 유치장에 수감하는 ‘잠정조치 4호’와 구속영장 신청을 하지 않거나, 검찰이 경찰의 영장 신청을 반려하거나, 법원이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했기 때문이다.
1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0월 이후 발생해 언론에 알려진 스토킹 살인 사건은 신당역 사건을 포함해 총 7건이다. 스토킹 범죄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사건, 성폭행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피해자 어머니를 살해한 이석준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각 사건의 경과 조치를 살펴보면 경찰·검찰·법원의 안일한 판단과 미흡한 조치로 비극적 사건을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발생한 신당역 사건의 경우 지난해 법원이 가해자 전모(31)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올해 초 피해자의 두 번째 고소에도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결국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스토킹 범죄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현재 한국은 분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선, 잠정조치 4호의 경우 법원에서 기각률이 높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경찰청과 법무부로부터 받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 신청 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신청된 잠정조치 4호 500건 중 승인된 건은 225건(45%)에 불과하다.
잠정조치는 긴급한 상황일 때 행하는 것인데, 빨리 승인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잠정조치 4호는 보통 경찰 신청 후 승인까지 2~3일가량이 소요된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스토킹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잠정조치 4호도 선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잠정조치는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검사가 청구하고 판사가 인용하다 보면 일주일은 족히 걸린다”며 “갑자기 강력범죄로 바뀌는 스토킹 범죄 특성상 경찰이 긴급하게 체포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넣는 등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윤희근 경찰청장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과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검찰과 관련 협의체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이날 오전 이원석 검찰총장과 만난 뒤 “대검찰청은 경찰청, 지역단위의 지청과 해당 경찰서가 협의체를 만들 것”이라며 “스토킹 신고부터 잠정조치, 구속영장 신청 등 여러 단계마다 검경이 긴밀하게 논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