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큰 수술을 한 남편의 건강을 위해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갔다. 서울을 떠나면 못 살 것 같았는데 새 소리 들으며 눈을 뜨고, 숲 냄새를 맡으며 산책하고, 밭에서 바로 따온 호박과 풋고추로 된장찌개를 끓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어느 날 친구 집을 방문했다. 자연의 향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한옥 거실 한가운데 놓인 장식장에는 집에서 담근 빛깔 고운 과실주가 여러 병 들어 있었다. 의사 진단이 나오자마자 친구의 남편은 술을 끊었다. 그런데 친구는 직접 술을 담그고 거실 한가운데 술병을 쭉 진열해 놓은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몸은 아프고 평생 좋아한 술은 한 방울도 마실 수 없고 그래서인지 남편은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게 영 사는 낙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친구는 궁리 끝에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침 저녁으로 술병을 들여다보며 비록 눈으로 마시는 술이지만 평생 벗이 찾아온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오직 남편 기분을 위해 힘들게 여러 종류의 과실주를 담그는 친구.
요즘은 동네 문화센터에서 다양한 강의를 해 골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인기 있는 기타 강습반은 노인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하고 손가락도 매끄럽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여든이 다 된 할아버지 한 분이 수강신청을 하고 아주 열심히 배운다. 아내의 생일날 ‘금지된 장난 중 로맨스’를 들려 주기 위해서다. 무릎 수술을 받고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아내가 어느 날부터 눈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는 걸 느낀 할아버지는 가슴이 철렁했다. 하늘을 보면 하늘이 눈에 있어야 하고 바다를 보면 바다가 눈에 있어야 하는데 아내는 그저 멍하기만 하다. 아무 감흥이 없다는 건 삶의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프러포즈할 때 연주한 곡을 다시 들려주려고 한다. 비록 아름다운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아내의 눈빛이 다시 반짝이며 살아나길 소망하면서 누구보다 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