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도 모른 878억 영빈관 신축 명분도 예산편성도 의문투성이 논란 일자 바로 철회… 졸속 자인 “대통령실 정무 판단 부재” 비판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3월 20일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기다란 지시봉을 들고 용산 대통령실 이전 계획을 직접 설명했다. 앞서 9일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열흘 만이다. 윤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은 영욕의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용산 시대를 알리는 대국민 프레젠테이션을 방불케 했다. 30여분간 쏟아진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답변했다. “성급한 추진이 아니냐”는 우려에 윤 대통령은 “그런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직접 나서서 이해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답변이 다소 정교하지 못했고, 준비가 부족했던 측면은 있었지만, 당선인의 대국민 브리핑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국민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교통체증·예산낭비·국방부 이전 등의 문제 제기에도 용산 이전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윤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최근 영빈관 신축 논란은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영빈관 신축이 대통령실 이전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서다. 내년 예산에 반영됐다가 논란이 되자 윤 대통령의 지시로 바로 철회됐다. 윤석열정부 국정운영 오작동의 한 단면이다. 정부 정책은 명분이 필요하다. 국민에게 추진 배경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추진 방식을 검토하고 정책 파장을 분석한 뒤 대국민 홍보 방식을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영빈관 신축 소동은 대통령실의 정무적 판단 기능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여당 내에서도 같이 비판이 나오겠는가. 당내 최다선인 5선 정우택 의원은 지난 19일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영빈관 개보수 필요성이 있음에도 시기와 방법에서 정무적 판단을 잘못해 국민들께 심려를 끼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도 “대통령실의 (정책) 결정 과정 시스템을 재점검해봐야 한다”며 “영빈관 신축 결정 관련 특별감찰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감한다. 이번 영빈관 논란은 신축 계획이 일반에 공개되는 방법부터 시기, 그리고 철회되기까지의 전 과정이 의문투성이다. 예산 편성 사실은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후에야 알려졌다. 영빈관 신축 계획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지난 15일 밤이다. 그것도 야당 국회의원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한 SBS 방송 보도를 통해서다. 대통령실 예산으로 편성된 것도 아니라 ‘국유재산관리기금 예산안’에 반영됐다. 이유야 있었겠지만, 슬쩍 끼워 넣어 넘어가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렇게 반영된 예산이 아무도 모르게 집행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더 큰 문제는 878억원대 영빈관 신축 계획을 세우면서 수석실 내 충분한 논의와 공유가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데 있다. 대통령실 인사들과 통화를 해보니 대부분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신문을 보고 알았다”, “내부적으로 누가 이 문제를 처리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총리도 몰랐다고 한다. 경호처와 예산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참모가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필요해서 예산을 넣었으면 바로 철회한 것도 또한 문제다. 졸속추진을 자인한 셈이어서다.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예산안은 지난 2일 제출됐다. 대통령실 인적쇄신 전이다. 따라서 현재 대통령실은 문제가 없다며 두루뭉술 넘어가서도 안 된다. 먼저 실무진에서 판단을 못 해 사안의 중요성이 검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 보고는 올라왔는데, 중간 과정에서 배제됐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최종 낙점 단계에서 정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경우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한 정부 부처를 출입할 때다. 보안사고가 있었다. 대외비로 관리되던 내용이 언론을 통해서 공개됐다. 부처 차원에서 대대적인 색출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흐지부지 끝났다. 미관말직의 한 지인은 “유출자가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고위직”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