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이 온통 어질러지면/ 혹 사특한 기운이/ 병이 되어 생민(生民)을 해치니/ 각종 사례가 한둘이 아닐세/ 조짐이 재앙으로 나타나/ 돌림병 되어 유행하네/ 옛날에도 그랬다지만/ 올해처럼 심한 해는 없었네/ 염병도 아니요 마마도 아닌 것이/ 온 세상 끝까지 덮쳤어라.” 조선 후기 문신 윤기가 무오년(1798년·정조 22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크게 유행한 독감(인플루엔자)의 실상을 그린 시의 일부다. 시문집 ‘무명자집’에 수록됐다.
그 시절에는 유행성 독감을 윤감(輪感·돌림감기) 또는 한질(寒疾)이라 불렀다. 국가적 재앙이었다. 윤기는 “중국에서 일어난 독감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열흘 만에 서울까지 번졌는데 죽은 이가 열에 두셋이나 된다”고 했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만8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노론의 김종수, 남인 영수 채제공도 이때 숨졌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 “서울과 지방에서 유행병으로 전 가족이 몰사해 매장을 못하는 자가 있으면 휼전(恤典·이재민을 구제하는 특전)을 거행한다”는 ‘속대전(續大典)’ 규정을 거론하면서 “무오년 겨울에 독감이 갑자기 성했다. 그때 나는 황해도 곡산에 있었는데, 맨 먼저 매장하는 정책을 시행했다”는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