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삼아 ‘유교∼’를 접두어 삼은 유행어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가령 노출이 지나치거나 개방적인 생활 태도 같은 데에 일정 부분 거부감을 가진 젊은 여성을 가리킬 때 ‘유교걸’이라고 하는데, 전통문화의 중요한 축인 유교를 희화한 듯하여 언짢지만 당위성의 강조가 도드라진 유교적 특성을 감안하면 신세대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게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선비라면 그렇게 꼭 막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조선조의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나라에 끌려갔던 부녀자들이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전쟁 포로가 생환하였으니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했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엄정한 유교 윤리를 내세우며, 이미 실절을 했으니 내쳐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소설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은 그 부당성을 논파하는 글을 썼다. “옛사람들은 아내에게 죄가 있으면 내쳤지만 삼년상을 함께 치렀거나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은 비록 죄가 있더라도 내치지 않았다”(‘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인용)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정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래서 “내치는 것도 의리이고, 내치지 않는 것 또한 의리”라고 하여 경직된 논리를 벗어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