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사 왔다. 아파트 입구에서 따개비처럼 자리를 지키고 앉아 푸성귀들을 파는 할머니가 키운 고구마였다.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있는 고구마는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었지만 유난히 붉고 싱싱해 보이는 것이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고구마는 내게 있어 추억의 보고였다. 그 배경에는 유난히 고구마를 좋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한 가마니, 한 관, 한 상자처럼 손이 큰 어머니는 무엇이든 모개로 들여놓았는데 고구마도 마찬가지였다. 찬바람이 돈다 싶으면 어머니는 한 가마니를 주문해 쟁여놓고 계절이 바뀔 때까지 먹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고구마에 얽힌 이야기가 쌓일 수밖에.
그 가운데 하나. 벌써 수십년이 지난 일인데도 그 일은 결코 웃으며 넘길 수가 없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때 왜 그랬을까. 그날도 어머니는 막 쪄낸 고구마를 우리 자매 앞에 내놓으셨는데, 김이 빠지면서 벌어진 껍질의 틈 사이로 보이는 노란 속살이 무척 맛깔스러워 보였다. 재빠르게 나는 가장 크고 맛있어 보이는 고구마를 집어 들었고, 언니는 기다렸다 작은 것을 집어들었다. 크고 맛있어 보이던 고구마를 집어 들었던 나는 의기양양, 한입 베어 물었는데, 웬걸, 물컹하니, 물맛이 나면서 맛이 없었다. 내가 기대했던 밤고구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헌데 서리가 피어 있는 것처럼 뽀얀 밤이 언니의 고구마 속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약이 올랐을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고구마를 내려놓고 게임을 하자고 꾀를 냈고, 게임이 끝난 다음 나는 재빨리 언니의 고구마를 집어 들고는 내 거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때 언니는 황당해했고, 그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얗게 분이 피어 있는 언니의 밤고구마를 차지하기 위해 나는 제법 억지를 부리고 패악까지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