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재정비가 뜨거운 감자입니다.
정부는 내실 있는 재정비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하루빨리 계획을 잡아
순차적으로라도 착수해야 한다고 재촉합니다.
혹시 재건축 호재를 어서 누리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노후화된 집에서
더는 살 수 없다는 호소인 걸까요?
‘재건축 촉구’ 피켓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실태를 전하기 위해 1기 신도시 5곳 전부를
현지 주민과 함께 각각 다녀봤습니다.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산본 신도시를 둘러본 결과 ‘작지만 알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면적이 1기 신도시 중 가장 작은 만큼 지하철 4호선 산본역을 중심으로 아파트와 공원, 학교 등 어디든 금방 이동할 수 있었고, 도로가 반듯해 초행길임에도 헤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가는 평일 낮에도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남재형씨 등이 2018년 발표한 ‘수도권 1기 신도시의 관리 우선 지역 선정에 관한 연구’에서 5개 신도시 46개동 중 쇠퇴 정도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던 수리동마저 수풀이 우거지고 주변이 조용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산본에서 지하철로 10분 거리에 있는 안양시의 평촌 신도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일 밤에 찾아간 이곳에서도 널찍하고 반듯한 도로와 북적이는 이들로 활기가 도는 상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지인의 시각으로는 두 신도시 모두 살기 좋은 곳이었지만, 정작 주민들은 지난 30여년간 변화한 삶의 방식을 반영하지 못한 아파트 구조로는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오래된 구조가 야기한 삶의 질 저하
산본·평촌 주민들이 입을 모아 호소한 건 무엇보다 부족한 주차 공간이었습니다.
취재 협조를 얻어 살펴본 산본 주공 11단지는 가구당 0.38대에 그쳤는데, 오후 4시쯤에도 이미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단지 안이 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평촌의 한 아파트 단지는 0.27대에 불과해 소방차 주차 구역을 침범한 이중주차는 기본이었고,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폐쇄회로(CC)TV가 있음에도 오후 8시쯤 근처 도로에는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아파트 내·외부의 세세한 모습은 산본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매물로 나온 두 가구에 들어가 봤는데, 현관문에서부터 보일러실까지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있었습니다.
동행한 이승준 산본 주공 11단지 재건축 준비위원장은 “인테리어는 큰 의미가 없다”며 “구식 구조를 봐달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 특성상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소음이 심한 데다가 층간 소음은 물론이고, 화재 대피용으로 설치된 베란다 경량 벽 탓에 측간 소음도 심하다고 전했습니다.
이 원장은 함께 지상 주차장을 내려보면서 “차량과 사람의 동선 분리가 안돼 아이들이 뛰어놀 곳이 없다”며 “이런 식의 예전 주거 형태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호소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건물 밖으로 나와 외벽 곳곳에 보이는 균열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가로·세로 균열이 쉽게 보였고, 1층의 금 간 벽에선 손으로 쉽게 콘크리트 조각을 떼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철근의 녹까지 일부 딸려 나왔습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수준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일자리 문제는 해결 중...“더 필요하다”
이밖에도 1기 신도시의 고질병인 일자리 부족 문제는 산본과 평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앞서 국토연구원의 2020년 연구에서 산본과 평촌은 고용 자족성이 1기 신도시 5곳 중 가장 부족한 것으로 꼽혔습니다.
연구 결과 산본은 2016년 기준 직주비, 유출 대비 유입지수가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두 지표가 낮다는 건 지역으로 유입되는 이들보다 통근을 위해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는 걸 뜻합니다.
평촌은 자족지수와 내부 고용률이 가장 낮았습니다. 자족지수가 낮다는 건 지역민이 외부로 일자리를 찾아 나가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고, 내부 고용률이 낮다는 건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외지인에 의해 채워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2016년 이후 안양에 산업시설이 잇따라 준공됐다는 점은 희망적입니다.
이듬해에는 ‘평촌 스마트 스퀘어 도시 첨단 산업단지’ 개발 사업이 마무리됐고, 2016년부터 지난 7월까지 지식산업센터 24곳도 공사에 들어가 13곳이 완성됐습니다.
주민들은 일자리 확충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산본은 서울 강남권의 ‘베드타운’ 형태로 개발이 됐지만 도시가 자생적으로 돌아가려면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며 “지금 (산본에) 있는 공업 시설들이 지식산업 등 부가가치가 높은 방향으로 전환해야지만 도시가 살아난다고 본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