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구포대교가 ‘투신 명소’로 전락했다. 부산 강서구 대저1동과 북구 구포동을 연결하는 구포대교의 역사는 1932년에 건설돼 2008년까지 존속한 ‘구포다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포다리는 낙동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로, 개통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긴 교량이자 영도대교와 함께 부산을 상징하는 다리였다. 노후화로 1993년 길이 1765m, 너비 30m 왕복 6차로의 구포대교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구포대교가 투신 명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8일 부산시의회 박대근 건설교통위원장(국민의힘·북구1)이 부산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낙동강을 연결하는 부산지역 주요 5개 교량 중 구포대교의 투신사고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부터 최근 5년까지 이들 5개 교량에서 발생한 전체 투신사고는 94건이다. 연도별로는 △2017년 12건 △2018년 20건 △2019년 20건 △2020년 16건 △2021년 26건이고, 올해는 이미 지난달까지 36건을 넘어섰다.
이 중 구포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사고 수가 단연 최고다. 5년간 발생한 투신사고 가운데 62.7%가 구포대교에서 일어났다. 2017년과 2018년 각각 9건과 13건이 발생해 1명씩 사망했고, 2019년 12건 발생했으나 사망자는 없었다. 2020년과 지난해 각각 11건과 14건이 발생해 3명과 1명이 사망했다. 올해는 벌써 18건 발생에 3명이 사망했다. 이는 부산지역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사망률의 10배에 달한다.
구포대교에서 투신사고 발생빈도와 사망률이 유독 높은 것은 투신 예방을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포대교에 설치된 투신 예방시설은 상담전화(4대)와 안내스티커, 모니터링용 낡은 폐쇄회로(CC)TV(3대)가 전부다. 또 보행로의 난간 높이도 1.1m에 불과해 투신사고를 예방하는 안전시설로는 역부족이다.
박 위원장은 “(구포대교가) 버스 정류장 및 도시철도역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데다 교량에 보행로가 설치돼 있어 ‘투신’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부산시를 비롯한 교량 관리 기관의 관심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교량 관리를 복수의 기관에서 하다 보니 책임 소재도 모호하다. 교량 구조물의 보수·보강 업무는 부산시에서 맡고 있고, 교량 부속시설물인 난간 관리는 관할 자치단체인 북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북구는 도로안전시설물 표준 규격에 따라 구포대교 난간을 설치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2년 전 부산시 및 정부 관련 부처 등과 구포대교 난간을 높이는 방안을 협의했으나, 비용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북구 관계자는 “구포대교에 설치된 난간은 투신방지용이 아니라 차량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현재 살림살이도 빠듯한 상황에서 예산을 투입해 구포대교 난간을 보강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교량의 관리주체가 시설물을 설치해야 유지·보수 차원에서도 합리적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최근 투신사고가 급증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예산인데, 투신 예방시설 설치에 1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며 “당장은 힘들기 때문에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