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하나로 무한한 세계 그렸던 천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김정기 별세

밑그림 없이 즉흥 작업 유명
‘라이브 드로잉 대가’로 불려
향년 47세… 전 세계 팬 애도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 위에 펜 하나로 새 세계를 그려냈던 일러스트레이터 김정기 작가가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47세.

고인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슈퍼애니를 이끌어 온 김현진 작가는 5일 공식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부고를 전했다. 고인이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 서울 홍익대 앞에서 입시학원을 하던 시절부터 함께했던 동료인 김현진 작가는 “정기는 우리를 위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다”며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안 해도 된다. 고마워 정기”라고 애도의 메시지를 남겼다. 천재 작가의 애석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전 세계에서 1만명 이상이 고인을 추모하는 댓글을 달았다.



고인은 지난 3일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 일정을 마친 뒤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중, 공항에서 심장 통증을 호소해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큰 종이에 연필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즉석에서 바로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라이브 드로잉의 대가’라고 불렸다.

2001년 옛 이동통신사 KTF의 간행물 ‘Na’를 시작으로 2002년 ‘영점프’를 통해 ‘퍼니퍼니’를 연재하며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네이버웹툰에서 박성진 글 작가와 함께 ‘TLT’(TIGER THE LONG TAIL)를 연재했다.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부스 전체를 메운 작품 제작과정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계기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2016년에는 국내 기업 광고를 통해 그의 마법 같은 라이브 드로잉을 전국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2017년에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문재인정부 첫해 기념 라이브 드로잉 쇼를 7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작가로서 고인은 내년까지 전시 일정이 꽉 차 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 중이었다.

그가 고난도의 세밀하고 복잡한 형태의 드로잉을 즉흥적으로 그려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건 꾸준한 관찰과 연습으로 쌓은 내공 덕이었다. 외국 작가들도 고인을 ‘드로잉 마스터’라 부르며 존경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