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년간 영국 런던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최근 복귀했다. ‘민주주의에서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수업의 공공외교 분야 세미나 중 중국 친구와 홍콩 친구 사이 벌어진 논쟁이 잊혀지지 않는다. 백신 개발국들이 타국에 백신을 공급·기부하면서 ‘연성권력(soft power)’을 구축하는 행위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홍콩 친구가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 지역에 공급된 중국 백신이 ‘가짜 백신’이라는 취지로 얘기하면서 중국 친구 얼굴이 굳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강의실에서 특히 앳된 두 동양인 청년의 주제를 벗어난 논쟁은 격앙됐다. 영국인 교수는 논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2차 대전 뒤 꾸준히 이민을 받아들인 런던은 인종적으로 다문화 도시다. 이민자 사회와 유학생 사회에서 그중 일명 ‘인종적 중국인(Ethnic Chinese)’의 비중이 적지 않다. 런던 차이나타운의 ‘중국 요리’가 본토뿐 아니라 대만·홍콩식으로 다양하듯 그들의 출신도 다양하다. 문화적 유사성과 한류 때문인지 이들은 대부분 한국인에 호의적이었다. 덕분에 제3국에서 부대껴 살아가는 이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필자가 만난 이들에 한정된 얘기다.
본토 한족 중국인과 그 외 사이 흐르는 묘한 긴장은 피할 수 없지만, 이들은 평소 정치적 대화를 피하며 공존해왔다. 하지만 최근 갈등 노출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 여럿 생겼다. 이미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로 골이 깊어졌고,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영국 사회 전역의 거센 반러 여론과 함께 대만인들의 반중 정서가 깊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강의실 안팎에서 홍콩·대만인들은 중국인들에게 본토 중심의 인식이 비치면 발끈했다. 반대로 중국인들은 한국 일각의 반중 정서까지 포함시켜 “왜 아시아인들끼리 잘 지내지 못하냐”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