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어설까

방송인 박수홍씨 친형의 횡령 사건을 계기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친족상도례는 함께 사는 가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는 그 처벌을 면제하는 제도다. 가정 내부의 자율적 해결을 위해 국가 개입은 최소화하자는 취지이지만, 피해자 의사·죄질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해 지나친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도 있다.

 

국회는 장애인 학대 범죄에서는 친족상도례를 배제하도록 장애인복지법을 지난해 개정했고,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이외에 제도 전반에 대한 개정 움직임이 가속화할지 주목된다. 

 

친족상도례는 형법 제328조에 규정돼 있다. 제328조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재산범죄(강도죄·재물손괴죄 제외)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한다고 규정한다. 같은 조 2항은 직계가 아니거나 함께 살지 않는 가족에 대해서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 친고죄로 다룬다.

 

이는 우리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일본 형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제도다.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의 태도가 친족상도례의 연원으로 지목된다. 프랑스의 경우 존속, 비속, 배우자만을 친족상도례의 적용 대상으로 명시한다. 배우자의 경우, 별거 중이거나 별거를 허가받았다면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배우자·직계혈족 또는 동거친족’을 대상으로 형을 면제하고, 나머지 친족에 대해선 우리처럼 친고죄로 다룬다. 

 

◆적용 대상 광범위, 장애인·노인 상대 범죄 악용 지적도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의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이 필요 이상으로 넓다는 지적이 있다.

 

모성준 부장판사는 2014년 낸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개정방향’이라는 논문에서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나라들도 친족 범위를 직계존비속 또는 주거공동체에서 함께 동거하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한다”며 “(우리도) 가족 내에서 개인의 독립적 영역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확산하는 사회적 흐름에 따라 친족 범위는 가족공동체의 핵심을 이루는 최소단위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한 신분관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의사가 가장 존중돼야 할 영역에서 이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친족상도례는 장애인·치매 노인 등 약자 등을 상대로 한 범죄에서 악용된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지적 장애인인 조카 명의로 대출을 받고, 계좌에서 마음대로 돈을 빼내 쓰는 등 약 2억4000만원을 갈취한 삼촌과 숙모가 친족상도례에 따라 처벌받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노인 대상 재산범죄의 대다수가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현실도 친족상도례의 악용 가능성을 높인다. 보건복지부의 ‘2021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노인 대상 경제적 학대의 행위자 83%가 자녀, 배우자 등 친족이었다. 

 

이에 국회는 지난해 6월 장애인복지법을 개정, ‘사기죄·공갈죄·횡령죄·배임죄’ 등의 장애인 학대 범죄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 적용을 배제하는 특례(장애인복지법 제88조의3)를 신설했다.

 

◆폐지는 위험…‘전부 친고죄’ 개정 제안도

 

이외에도 친족상도례 제도를 바꾸려는 여러 시도가 진행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은 친족상도례를 전면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이병훈 의원은 사기와 공갈, 횡령과 배임죄에 한해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같은 당 김영진 의원은 아동 상대로 친족 관계의 학대 행위자가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친족상도례 규정을 적용할 수 없게 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같은 당 전영기 의원은 노인 상대 경제적 범죄에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게 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정부 주도로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친족상도례 규정 개념을 검토하고 있냐’고 묻자 “지금 사회에선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개정 의사를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전면 폐지론’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친족상도례를 완전히 폐지하면 부모 몰래 장학금 받아 쓴 것도 죄가 될 수 있다”며 “가정 내에서 훈육으로 다스릴 영역까지 국가형벌권이 과도하게 개입할 수 있단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주원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도 “가정사를 자율적 해결에 맡기는 게 나쁜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전면 폐지) 등 처벌 강화 논의는 무비판적인 엄벌주의의 반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폐지보다는 전부 친고죄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개별 가정마다 입장과 기준이 다르니, 피해자가 직접 처벌 의사를 밝혔을 때 국가가 비로소 개입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는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