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이 변합니다. 국민과 세계가 보고 있으니까요.”
그간 갖은 논란에 공정성 시비까지 더해져 여러 차례 파행을 겪어온 대종상영화제가 ‘국민이 봅니다. 세계가 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대대적인 혁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심사’라는 명목으로 ‘투표권 장사’에 나섰다는 논란이 새로 불거졌다.
문제는 ‘혁신’ 목적으로 꺼내 든 이 국민심사단 모집 방식이다. 대체불가능토큰(NFT) 1만개를 발행해 판매하는데, 이를 구매한 사람들에게 향후 3년간 국민심사단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투표권을 돈과 맞바꾸는 셈이다.
NFT는 총 9종으로, 가격에 따라 권한과 혜택이 상이하다. 남녀 신인상·조연상 투표 자격을 주는 NFT(블루·그린·화이트, 레드·퍼플·AOZ)의 경우, 각각 5만5000, 7만7000원으로 책정돼있다. 남녀 주연상을 투표할 수 있는 다이아, 플래티넘, 실버 NFT는 9만9000원에 달한다.
NFT 종류별로 한 사람당 9개까지 구매가 가능하다. 주최 측은 NFT를 가장 많이 산 구매자에게 신인상 시상자로 무대에 오르게 한다거나 애프터파티, 리셉션 등에 참석할 수 있는 VVIP 특전을 부여하는 등 구매가격으로 각종 혜택을 차등화하며 구매 경쟁도 유도하는 양상이다.
이를 두고 연합회 측은 “세계 어떤 영화제도 시도하지 못한 혁신적인 후원 방식”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대종상을 국민 품으로’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했을 뿐, ‘돈을 낸 국민 품으로’ 대종상을 돌리면서 국내 최고(最古) 영화 시상식으로서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아이돌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K팝 시상식에서나 이뤄지던 유료 투표권 시스템을 대종상영화제가 도입하면서 영화계에도 ‘투표권 사재기’나 ‘팬덤 간 과잉 경쟁’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대종상영화제가 투표권 판매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종상영화제는 이미 2015년 인기상 부문에서 유료 투표 시스템(200원)을 도입해 공정성·상업성 논란을 겪은 바 있다. 대수술을 하겠다며 칼을 빼 들어놓고 투표권 판매를 슬쩍 부활시킨 것을 두고 개혁 의지에 대한 진성성까지 의심받는 상황이다.
과도한 ‘팬덤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K팝 업계보다 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보통 유료 투표권은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 같은 대중성 있는 부문을 대상으로 한다”며 “이번 대종상영화제는 인기상이 아닌 주요 부문인 배우상 6개를 모두 상업화하겠다는 파격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정한 심사는 시상식의 본질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NFT라는 시대적 변화에 편승해 트로피를 자본에 넘긴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대종상이 영화산업 발전을 견인할 권위 있는 시상식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