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20년 3월 이른바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불법으로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약국 직원인 지인에게서 구한 의약품 등을 원료로 이틀간 에토미데이트 총 1700㎖를 만들고 85병으로 소분했다. 이후 A씨는 이 중 80병을 현금 900만원에, 나머지 5병은 상품권 130만원에 판매했다.
이 사건은 A씨로부터 사들인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하고 상가건물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참고인을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드러났다. 1심 법원은 A씨에게 약사법 위반으로 징역 2년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에토미데이트를 불법으로 판매하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매년 꾸준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세계일보가 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통해 전수 확인한 결과,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에토미데이트를 불법으로 판매하다가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총 20건이다. 20건 모두 에토미데이트 판매에 대해 약사법 위반 혐의만 인정됐다. 실제 투약까지 돕다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의료법 위반 혐의가 함께 적용된 경우도 4건 있었다.
에토미데이트는 수면내시경 검사에서 흔히 쓰이는 전신마취제다. 효능과 용법이 프로포폴과 유사하다. 그러나 프로포폴이 2011년 마약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반면, 에토미데이트는 전문의약품으로만 관리되고 있다. 마약류관리법이 아닌 약사법 위반으로만 처벌을 받기 때문에 판매자들 대부분은 위 사례들처럼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구매자 또한 적발되더라도 형사처벌이 아니라 ‘의약품안전규칙’에 의해 과태료 100만원만 처분받을 뿐이다.
오남용 사례가 심각한데도 에토미데이트가 전문의약품으로만 취급되는 이유는 학술적으로 환각성·의존성·중독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향정신성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고, 오남용할 때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돼야 마약류로 규정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도 에토미데이트는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에토미데이트의 오남용 추세를 볼 때 마약류 지정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마약으로 쉽게 옮아갈 위험성이 있는 이른바 ‘게이트 드러그’로 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토미데이트 불법 판매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상당수는 프로포폴이나 필로폰, 대마 등 다른 마약류 약품을 같이 취급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마약퇴치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 교수는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같은 계통으로,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남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늘어나는지에 대한 엄격한 데이터가 확인된다면 논의를 거쳐 마약류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