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 등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으로 대형 참사를 직접 수사하지 못하는 검찰도 황병주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본부장으로 사고대책본부를 가동하는 등 이번 참사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초동 수사에 나선 경찰과 공조하고 있다.
경찰은 31일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본격적인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은 475명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중심으로, 사고 현장 인근의 폐쇄회로(CC)TV와 사설 CCTV 42개소에서 51개의 영상물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경찰은 CCTV 외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도 살펴보고 있다. 사고 당시 현장의 목격자와 부상자, 인근의 상인 등 44명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30일까진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데 주력했다”며 “44명 외에도 주변 상인 등을 대상으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검은 경찰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30일 이후 대검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검시 및 유족 인도 등과 관련해 3차례 낸 입장문엔 모두 “경찰과의 긴밀한 협력”이 포함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대검에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사고 원인과 경위의 명확한 규명 등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히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169석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으로 검찰청법상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에서 대형 참사가 제외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대형 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서 ‘부패·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됐다. 한 장관 주도로 윤석열정부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인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을 개정·시행해 그 범위가 다시 확대됐는데, 대형 참사는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검수완박 시행 전에는 대형 참사, 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사회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재난과 관련해 범한 죄도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이 법상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인명 또는 재산의 피해’로, 사회 재난에 해당한다. 다만 이 법엔 국가기관이 검사에게 고발하도록 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선 2019년 11월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특별수사단을 구성했다. 임관혁 서울고검 검사(현 서울동부지검장)가 단장을 맡아 1년 2개월간 해양경찰청의 부실 대응,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방해 등 각종 의혹을 수사했다. 특수단은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해경 지휘부 1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박근혜정부 고위 관계자 9명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사고대책본부와 관련해 “일단 사고 수습이 먼저”라면서 “수사 방향이나 내용을 섣불리 말하기는 어려운 단계인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주최자·안전 책임자 없어 국가배상 어려워…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면 법적 처벌 가능성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사흘째인 31일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 소재와 처벌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핼러윈 축제’라는 특성상 안전관리 책임자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물론 국가배상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다만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목격담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들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통상적인 압사 사고의 경우 해당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된다. 과거 사례를 보면 행사장이나 학교 등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등에서는 행사 주최자나 안전관리 책임자들이 이 혐의로 처벌된 전력이 많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에서 일어난 ‘운동장 압사 참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관람객이 몰려 11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친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김근수 전 상주시장, 행사를 주관한 방송사 PD, 상주시청 전직 국·과장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들은 모두 금고형의 집행유예 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받았다.
1990년대 광명의 한 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1명이 희생될 때는 물론, 대구 우방타워랜드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당시 안전관리자들이 대거 수사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이태원 압사 참사는 주최자가 없을 뿐 아니라 특정 시설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을 공중이용시설이나 교통수단 등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적용이 어려울 전망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고 지자체나 경찰 등이 사람들이 이만큼 모였을 것을 예상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법적 책임은 다른 문제”라며 “국가배상이 성립되려면 국가의 고의·과실로 관리, 감독 책임이 문제가 되어야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가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도 “현장에 있었던 경찰이 경찰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한 상황이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려워보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야구장이나 출퇴근길 지하철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매뉴얼 마련과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생존자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목격담은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4∼5명의 무리가 “밀어! 밀어!”를 외치며 사람들을 밀어내 압사 사고가 시작됐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현재 폐쇄회로(CC)TV 등 사고 당시 장면을 분석해 해당 증언이 사실인지 확인 중이다. 이 같은 목격담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검사 출신의 김은정 법무법인 리움 변호사는 “밀라고 외쳤던 사람들을 특정할 수 있다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사가 수술을 잘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하철에서 실수로 남의 발을 세게 밟는 경우나 밀쳐서 다치는 경우 업무상과실치상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인파 속에서 자신이 밀 경우 누군가 넘어질 수 있다는 걸 예상하면서도 밀었다면 이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