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울적하고, 사람 많은 곳도 무서워서 약속을 취소했어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A씨는 다가오는 주말 아들과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 약속을 취소했다. 아이는 기대했던 나들이를 가지 못해 속상해했지만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있던 데다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A씨는 “다들 이태원 참사로 슬퍼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아이와 놀이공원에 가는 건 마음이 불편했다”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3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은 시민들의 우울함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들이·술자리 등 약속을 취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 국민에게 덮친 ‘트라우마’로 인해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도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이태원 참사는 국민적인 트라우마를 유발하고 있다.
앞서 2014년 벌어진 세월호 참사 등과 달리 이번 이태원 참사는 일반 시민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한 만큼 대중이 받아들이는 불안과 공포가 더 크다는 의견도 있다. 또 사고 당시 인근에 있던 시민들이 참혹한 현장의 모습을 찍은 영상과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 것이 공포심을 증폭시켰다는 분석이다.
직장인 박모(29)씨는 “비슷한 또래가 사고를 당한 것도 큰 슬픔으로 다가왔는데, 자주 가서 놀던 이태원 골목에서 사고가 난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사고 당일 밤 본 영상들이 잊히지 않는다”고 괴로워했다.
실제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상담을 하기 위한 발걸음도 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심리치료 지원 등을 확대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후 집중적으로 운영된 도내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에 지난달 31일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276명이 상담을 요청했다. 하루 평균 90명을 웃도는 수치로 이 중 절반가량이 참사 목격자와 대응 인력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담을 받은 276명 가운데 고위험군으로 판정된 이들은 3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 용인의 한 40대 가장은 아들을 참사로 잃었다며 심적 고통을 호소했으며, 한 20대 청년은 일행 3명이 당일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홀로 살아 돌아왔다며 죄책감과 불안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경기도는 고위험군들에게 정신전문의료기관 이용과 치료비 지원 등을 안내했으며, 관리를 이어갈 계획이다.
서울시도 이번 참사로 트라우마를 겪는 시민이 시내 정신전문의료기관 225곳에서 우울·불안 검사를 최대 3회까지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울광장과 이태원 합동분향소에는 심리지원 현장 상담소도 운영 중이다. 이외에 광주시 등 다른 지역에서도 심리치료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