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가을 날씨를 보인 지난달 25일 오전 9시30분, 광주 남구 방림초등학교 급식실은 분주했다. 하얀 위생복 차림의 조리원 5명은 이날 학생들에게 배식할 메뉴를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급식실 가장자리에 마련된 커다란 솥 주변에는 닭튀김 요리를 하면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했다. 솥에서 나는 섭씨 150도의 열기에도 조리원은 양념 된 닭 조각을 넣고 튀기고 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솥에서 튀겨진 닭을 조리 망에 담아 한 번에 들어 올려 배식대에 옮기는 일도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 또 국을 끓이거나 밥을 볶는 솥에서 나오는 열기와 연기가 더해지면서 조리실은 뿌옇게 변했다. 20㎏이 넘는 식재료를 이리저리 운반하는 조리원들은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했다. 이날 600명분의 배식을 준비하는 급식실은 ‘극한직업’의 현장이었다. 5년 차인 조리원 이모씨는 “뜨거운 기름 솥 앞에서 무거운 튀김류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더니 어느새 손과 어깨가 망가졌다”며 “찜질이나 파스를 붙이지 않으면 다음 날 작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통증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조리 때 유해 물질 조리 흄 발생… 폐암 산재 인정 50명
학교 급식 종사자는 항상 폐암에 노출돼 있다. 고온에서 기름으로 튀김이나 볶음, 구이를 조리하는 과정에서 조리 흄이 발생한다. 이 조리 흄은 폐암 발생 위험도를 높이는 유해 물질이다.
급식 종사자의 폐암 산재 신청수를 보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9월까지 근로복지공단에 폐암 산재 신청한 급식 종사자는 모두 79명이다. 이 가운데 50명이 산재로 승인됐다. 산재 인정을 받고 사망한 급식 종사자는 5명에 달한다. 불승인은 7명이며, 21명은 진행 중이다.
광주 지역에서 20년 동안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다 폐암 판정을 받은 한 조리사는 “날마다 튀김과 부침개, 구이를 할 때 가슴이 조여오는 통증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폐를 절반가량 절제한 그는 폐암 3기로 확산하면서 편도까지 잘라냈다.
학교 급식실에서 종사자의 화상이나 베임, 끼임 등 안전사고가 잇따라 작업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한 산재가 1200건을 넘었다. 사고 유형을 보면 넘어짐(327건)과 화상(307건)이 가장 많았으며, 근골계질환(156건), 끼임(83건), 부딪힘(74건) 순이다.
안전사고 건수도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9년 871건이던 안전사고는 지난해 1206건으로 38% 증가했다. 올해도 8월까지 765건으로 집계돼 2019년 수준에 근접했다.
◆조리사 1명이 121명 담당… 공공기관 평균 64명의 2배
급식 종사자인 조리사 1인당 급식인원은 노동 강도를 측정하는 중요 지표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초·중·고 급식 학생수는 538만5300명이다. 여기에 교육공무직원 16만8825명과 교원 50만859명을 포함하면 총 급식인원은 605만4984명이다. 전국의 초·중·고 학교에 종사하는 조리사는 4만9003명으로 조리사 1명당 급식인원은 121.5명이다.
집단급식을 하는 8개 공공기관의 급식 종사자 1인당 평균 급식인원은 64명이다. 육군 기준 군대는 75명이다. 학교 급식 종사자의 급식인원은 다른 집단과 비교해보면 2배 이상 많은 편이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교직원과 공무직원을 제외한 학생수 기준으로 급식인원을 결정해 혼란을 주고 있다.
광주 남구 한 초등학교의 경우, 실제 급식을 하는 인원은 600명이 넘지만 학생수인 540명에 맞춰 식자재 공급과 조리사 인원이 배치되고 있다. 이 학교 영양사는 “실제보다 급식인원이 60명 많지만, 조리원 배치 기준표는 학생수 기준으로 정해진다”며 “이 때문에 조리원수가 줄어들어 그만큼 노동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비노조는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원인으로 높은 업무 강도를 꼽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 급식 종사자의 적정 인원 배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연구 결과를 토대로 노조와 협의해 표준화한 배치 기준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학비노조의 입장이다.
상당수 시·도 교육감은 학기 중 학교 급식을 방학과 아침까지 확대하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방학 중에는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데다 방학 기간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급식 종사자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은 지난 7월 방학 중 학교에 나오는 초등 돌봄교실 학생에게 급식을 추진했으나 급식 종사자의 근무 형태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발해 결국 무산됐다.
이재진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조리사의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 식수 인원을 결정해야 한다”며 “또 일부 시·도 교육감이 추진하고 있는 방학 중 급식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노동 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 쓰는 조리할 때 유해물질 배출 급증… 산보연 조사결과 들여다보니
초·중·고 학교 급식실은 안전할까. 이유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원은 ‘2020년 산재예방 연구 브리프’에서 울산 지역 24개 학교의 단체급식 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는 조리 시 공기 중에 발생하는 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평가했다.
연구 결과, 튀김이나 계란말이, 스크램블, 삼겹살 등 기름을 사용하는 식재료 조리 과정에서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발생이 복합적으로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산화탄소는 최대 295ppm이 검출됐다. 이산화탄소는 기계 측정 한계치를 초과한 8888ppm 이상 나왔다. 일산화탄소는 혈액 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산소 공급을 저해하는 화학적 질식제이다. 이산화탄소도 공기 중 산소량을 떨어뜨려 질식을 유발하는 단순 질식제로 알려져 있다. 이 두 물질은 체내 저산소증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인천·경기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학교 급식실 조사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2017년 2건, 2018년 10건 발생했다. 당시 일산화탄소 중독은 조리실의 공기 질 환경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조리 과정에서는 포름알데히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발생량은 사무실 오염물질 관리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으로 확인됐다.
학교 급식실의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환기 체계가 필요하다고 이 연구서는 분석했다. 급성 중독이나 조리 환경 발생 물질을 감소하는 방법은 급식실 환기에 달려 있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 연구서는 캐노피 후드(외부식 국소 배기 장치)의 올바른 사용 방법도 내놓았다. 환기를 위해 개방한 창이 자칫 국소 배기 환기 장치의 배기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소 배기 환기 장치의 성능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선풍기나 에어컨의 공기 방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