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나무를 벌채하는 사진, 오른쪽은 나무로 인테리어된 유치원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람들은 나무로 꾸며진 공간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느낌이 든다’, ‘마음이 안정된다’, ‘친환경적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무를 베는 사진을 보면 거부감이 듭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 같아서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나무를 쓰려면, 필연적으로 나무를 베어야 합니다.
갈등이 듭니다. 나무를 사용하기 위해 베어야 하는지,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
지금은 푸르른 산림을 우리나라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달랐습니다. 전쟁 후 황폐해진 건 산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73년 정부가 녹화사업을 시작하고, 민둥산에 빽빽이 나무를 심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베는 사람은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은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나무를 베는 것은 ‘산림파괴’라는 인식도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해 강원 홍천의 민둥산 사진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한꺼번에 넓은 면적을 벌채해 산 하나가 통째로 붉은 흙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에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무 베기는 지양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2019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후 2050 탄소중립이 전 세계적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탄소중립은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개념인데, 각국은 이를 위해 나무를 많이 심고, 또 많이 쓰기로 했습니다. 나무는 주요 탄소 흡수원인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쓰지 않을 게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벌채나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목재 이용 방식은 피해야 하지만, 적절히 베고 가꿔 산림을 건강히 순환시켜야 지속 가능한 지구에 한발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세계일보는 오스트리아, 캐나다, 일본 등 해외 및 국내 취재를 통해 본격적인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산림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정립하고 지속 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봤습니다.
◆녹화사업의 성공…그 후
고령 나무들 더는 방치 안돼
1970년 녹화사업 ‘결실’ 국토 63% 산림
76%가 수령 40~50년… 병충해 등 취약
탄소 순흡수량 4323만t… 10년 새 30%↓
국산 목재 사용 탄소 감축 길
플라스틱 썩는데 수백년, 나무는 20년
베어져 가구 돼도 탄소저장능력 그대로
벌목 꺼리는 韓, 목재 84% 수입산 의존
韓 임업 발전이 더딘 이유는
임도 적고 가공기계 부족 경제성 떨어져
대부분 소나무·낙엽송… 목재 가치 낮아
“목재로 쓸 수 있는 나무 심기 고민해야”
한국 산림은 1970년대 조림 이후 푸르게 가꿔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2020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산림면적은 약 40억6000만㏊로 지상 육지면적(5억1010만㎢)의 약 31%인데, 한국은 국토의 63%가 산림으로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50년 전 집중적으로 조림한 숲이 나이가 들면서 탄소흡수능력은 오히려 줄어가는 추세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 산림 탄소저장량은 약 19억3000만t, 매년 흡수하는 연간 순흡수량은 4323만t이다. 탄소저장량은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연간 순흡수량은 2008년도에 최고치인 6150만t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여기서 탄소저장량이란 우리나라 전체 산림이 품고 있는 총 탄소량을 말하며 연간 순흡수량은 매년 늘어나는 저장량을 의미한다.
이미 우리나라 산림은 노후화가 시작돼 흡수량 감소는 피할 수 없다. 마치 오래된 공기청정기 필터처럼 나무의 탄소처리량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관리를 해야 2050년 순흡수량 2300만t을 달성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산림의 탄소흡수량이 감소하는 주요 원인으로 불균형한 나이 분포를 꼽는다. 국가산림자원조사(NFI) 자료 분석 결과 한국 산림은 20∼30년 왕성하게 자라다가 이후 생장량이 점차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의 산림은 1970~80년대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40∼50년 수령의 나무가 전체의 75.5%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산림을 이용·관리하지 않고, 노후화한 상태로 방치한다면 탄소흡수량은 줄고 병충해 등 재해에도 취약해진다.
특히 나무는 베어져 목재가 돼도 여전히 탄소를 저장한다. 목재 건축물의 탄소저장효과를 살펴보면 1㎥당 약 0.1t의 이산화탄소가 저장된 것으로 계산된다. 승용차 48대가 1년 동안 배출한 이산화탄소량과 동일하며, 40㏊에 심어진 소나무(30년생) 숲이 1년 동안 흡수한 이산화탄소량과 같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계산법으로, 목재를 많이 사용할수록 탄소중립에 보탬이 되는 이유다.
목재를 사용할 거라면 가급적 국산 목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국제사회는 국내에서 수확해 사용한 목재만 국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탄소저장량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국산 목재는 운송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수입 목재의 절반 이하로 배출하며,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목재 자급률은 우리나라 산림의 총량에 비해 턱없이 낮다. 지난해 국내 목재 사용량은 총 2840만㎥였다. 이 중 국산 목재는 450만㎥로 15.9%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국제 목재가격이 치솟으면서 자원 안보 차원에서도 목재 자급률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목재 자급률을 2035년까지 3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국산 목재 사용 늘리지 못한 이유
산림자원은 풍부한데 이처럼 목재 자급률이 낮은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벌채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이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장년층은 민둥산이 푸르게 변하는 과정을 보고 자랐고, 젊은층 역시 어릴 적부터 ‘식목일’ 행사 등을 통해 나무는 심고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다. 미디어는 아마존 파괴 등 줄어드는 삼림의 문제점을 주로 보여준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나무를 베는 행위는 ‘파괴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지난해 홍천 민둥산 사진이 공개된 이후 벌채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이후 벌채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들이 허가에 더욱 소극적이어서 수입 목재 가격 급등으로 국산 목재가 필요한 임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인프라 부족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도 걸림돌이다. 산림 순환을 위해선 친환경 벌목과 대규모 목재 가공이 가능한 임업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한국은 우리 산세에 맞는 임업 기계가 부족하고 차량과 기계가 이동할 수 있는 임도도 적다. 1㏊당 임도 밀도가 3.6m에 불과해 독일(46m), 오스트리아(45m)는 물론 일본(13m)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전국 수백개 목재 공장은 대부분 영세해 비싼 자동화 기계를 들이지 못하고 있다. 목재 가공을 위해 통나무를 싣고 전국에 몇 대뿐인 설비를 갖춘 타 도시까지 이동하면 그 사이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가격이 올라 경제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국산 목재보다 이미 가공이 잘 되어 수입된 목재 쓰기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임업 관계자들이 ‘인프라 구축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한국 목재 자체의 낮은 경쟁력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의 경제림에 심겨진 나무 대부분이 산림녹화 추진 시절 심은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이다. 이들은 빨리 자라기 때문에 ‘녹화’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더 없이 좋은 선택이나, 목재로 쓰기엔 좋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나마 낙엽송이 원목으로 공급되고 있지만 국산 목재의 16%만 제재목(건축 등을 위해 통나무를 각재로 잘라낸 것)으로 쓰이고 절반은 갈아서 칩으로 만든다. 산림선진국들이 나무를 절반 이상 제재목으로 쓰는 것과 대비된다.
결국 나무는 많지만 고부가가치 창출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대해 강석구 충남대 환경소재공학과 교수는 “녹화사업 당시 나무를 쓰는 것은 목표가 아니었고 산림을 ‘순환’의 관점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50년 넘게 키웠지만 쓸 만한 나무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서 “30년을 키우면 30년을 키운 것에 맞는 목재 이용 가치가 있어야 한다. 공들여 키운 나무를 용재로 쓰고,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데 쓰려면 이제부터라도 미래를 생각하고 어떤 나무를 어떻게 심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면 산림 흡수능력 절반 줄어… 신규 조림 나서야”
김영환 산림과학원 산림정책연구관
에너지원으로 활용 화석연료 감축 가능
정부 탄소중립안에 ‘산림’ 작년 첫 포함
고령 나무 자르고 우수 수종 식재 중요
탄소중립은 에너지나 산업 분야에서 기존에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이미 산림을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한 지 오래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정책연구과 김영환(사진) 연구관은 6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산림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관은 산림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들을 개발하고, 그 정책에 따른 산림탄소흡수량의 증진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에 산림이 주목받는 이유는 자체로 ‘탄소 흡수원’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뒤, 산소를 내보내고 줄기, 가지, 잎 및 뿌리에 탄소를 저장한다. 나무는 수확한 이후에도 건축물, 가구 등의 재료로 이용돼 탄소를 계속해서 저장한다. 나무의 부산물들은 모아서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화석연료 이용을 줄일 수 있다.
김 연구관은 “우리나라도 지난해 탄소중립시나리오에 처음으로 산림을 포함한 흡수 분야를 포함시켰다”며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까지 산림에서 2360만t, 또 다른 초지나 습지 등에서 160만t 등을 흡수(순흡수량)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2050년 탄소중립시나리오에 따른 전체 산업 부문 탄소 배출량(5110만t) 절반 정도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산림청에서는 지난해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산림 분야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산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떨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는 불균형한 나이 분포를 좀 더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벌기령(나무를 자를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산림에서 목재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는 앞으로 흡수를 잘할 수 있는 그런 우수한 수종이나 품종으로 미래를 위한 후계림을 이렇게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김 연구관은 “만약 숲가꾸기 및 신규 조림 확대 등 강화된 산림 대책이 없을 경우 우리나라의 2050 산림 흡수 능력은 1390만t으로 기존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고 우려했다.
산림청은 수확된 목재를 목제품 등으로 이용하는 것을 장려한다. 또 새로운 산림을 조성하기 위해서 도시 숲을 조성하고, 섬 지역에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산림들도 앞으로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 나갈 계획이다. 무조건 벌목이 아니라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숲은 보호하고, 훼손지는 복구하는 사업도 포함됐다.
김 연구관은 “지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매년 새롭게 자라나는 생장량 대비로 한 20% 정도를 벌채해서 목재로 사용하고 있다”며 “다른 OECD 국가들은 매년 새롭게 자라는 양의 50% 정도를 이용하고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지금 굉장히 적은 양의 목재를 수확해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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