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소방·해경 등 하나로 연결 ‘재난안전통신망’ 구축해놓고도 정작 참사 당일엔 사실상 안써
소방본부 “공동대응” 요청에도 서울경찰청선 아무 반응 안 해 행안부 컨트롤타워 역할도 부실
“군중밀도 1㎡당 7명 땐 큰 사고” 美전문가 ‘통제 의무화法’ 제언
‘이태원 압사 참사’는 반쪽짜리 재난 대응 시스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손발을 맞춰야 할 경찰, 소방, 지방자치단체의 공조는 원활하지 않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할 행정안전부 대응 역시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1조5000억원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 통신망조차 무용지물이었다. 6일 행안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참사 당일 재난안전통신망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 소방, 해양경찰 등이 하나의 통신망으로 소통하는 전국 단일 통신망이다. 버튼을 누르면 통화그룹에 포함된 유관기관이 자동으로 연결돼 함께 통화할 수 있다. 세월호 사태 당시 관련 기관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이후 정부는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지난해 구축을 완료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 등은 기관 내부 연락에 이 시스템을 활용했을 뿐, 정작 핵심 기능은 쓰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현장에서 활용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과 소방 사이의 공조는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첫 사고 신고를 받은 지 3분 만인 오후 10시18분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서울청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소방재난본부 또한 같은 날 오후 10시56분 전화로 서울청에 “다수의 경찰 인력 투입”을 요청했는데, 경찰은 오후 11시 이후에야 대응을 시작했다.
컨트롤타워 역할도 부실했다.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 상황, 소방 출동 상황 등을 파악하고 전파하는 행안부 상황실은 당일 오후 10시48분에야 소방청 119 상황실로부터 참사를 보고받았다. 오후 6시34분부터 오후 10시11분까지 경찰에 11건의 신고가 접수되고 있음에도 행안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시장, 군수, 구청장, 소방서장, 해양경찰서장 등에게는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경찰서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해상에서의 사고는 행안부에 보고되지만, 이태원 압사 참사와 같은 육상 사고는 행안부 상황실로 전파되지 않는 셈이다. 또 행안부 장관은 소방대응 2단계 긴급문자부터 발송 대상에 포함돼 이상민 장관은 오후 11시20분에야 사고를 인지했다.
한편, 압사 예방을 목적으로 한 법 제도가 제정돼야 한다는 미국 학계의 연구 결과도 주목받고 있다.
트레이시 흐레스코 펄 오클라호마대 법대 교수는 2016년 논문 ‘압사에 대한 성문법적 해결책(A Statutory Solution to Crowd Crush)’에서 군중 밀도가 1㎡당 5명을 넘어서면 압사 위험이 급증하며, 7명에 이르면 거의 필연적으로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1동에는 7만명이 넘는 인구가 몰렸는데, 이는 1㎡당 7.7명 수준이다.
펄 교수는 “특정 장소를 정비하더라도 그 장소 주변에 운집하는 군중에 대한 대비책은 될 수 없기에 일어난 일”이라며 군중 관리·통제를 의무화하는 ‘압사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