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성범죄자 출소… ‘법과 우려’ 사이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수정이나 퇴고를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도박벽으로 늘 돈이 궁했는데 출판사에 미리 판권을 넘긴 뒤 시간에 쫓겨 집필하곤 했다. 예외적 작품이 ‘죄와 벌’이다. 다른 작품으로 번 돈이 있어 퇴고할 여유가 생겼고, 표현의 부족함을 깨달아 초고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 속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전당포 주인 자매를 악랄하게 살해하고 여주인공 소냐의 도움으로 자수해 죗값을 치른다. 하지만 주인공의 회개는 오늘날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분열적 자아 탓에 회개가 불가능하다거나, 억지로 끼워 맞춘 결말에 따른 암시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오상도 사회2부 차장

소설 속 상황과 닮은 ‘불편한 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성범죄자들이 잇달아 출소하면서 인근 주민들은 밤낮으로 불안에 떤다. 하지만 법무부는 주거를 제한할 근거가 없다며 ‘죗값을 치르고 나왔다’는 점만 강조한다. 재범 통계나 주거지 인근 상황은 고려치 않은 결정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의견은 팽팽히 맞선다. “남의 인권을 짓밟은 사람에게 권리를 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죗값을 치른 사람에게 이중 처벌을 야기할 수 있다”는 반박이다.

지난해 아동성폭행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경기 안산시는 몸살을 앓았다.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한 김근식이 갱생시설에 입소하려 한다는 소식 역시 지난달 의정부시에 폭풍을 몰고 왔다. 최근 출소한 연쇄성폭행범 박병화의 화성시 정착은 이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들이 머물거나 머물기로 했던 주거지나 갱생시설 인근에는 어린이집과 초·중·고교가 다수 있다. 주민들은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화성시의 한 학부모는 “이곳에 박병화의 거주를 허락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런 뻔한 논란은 왜 수건 돌리기식으로 반복될까. 정부의 책임 회피이자 게으름 탓은 아닌지 되물어 본다. 현실적으로 국내에선 법과 제도로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할 수 없다.

이에 국회에선 지난해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아동성범죄자가 주거지로부터 일정 거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조두순 방지법’이 발의됐다. 그러나 헌법상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미국에선 38곳 넘는 주에서 아동성범죄자가 학교나 공원 등으로부터 일정 거리 안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는 일명 ‘제시카법’이 시행되고 있다. 2005년 당시 9세이던 제시카 런스포드가 성범죄 전과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 만들어진 법이다. 지난 6일 국회에선 ‘한국형 제시카법’이 발의됐고, 최근 법무부도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일각에선 애초 아동성범죄 등에 형량을 대폭 늘려 ‘무관용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 등 선진국의 치료 목적 보호감호처분도 눈여겨봐야 할 대상이다.

법과 규정에 앞서 단 한 사람의 선한 국민을 잔인한 범죄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게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