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기름 붓나"… 참사로 슬픈 국민, 분노케하는 발언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 열기, 책임론 거쳐 촛불로
與 “타인의 죽음을 정쟁 도구로 삼아…배후에 야당”
당국자들의 참사 면피성 발언들 ‘부메랑’으로 돌아가
일각 희생자와 유가족 탓, 방송사 탓, 文 정권 탓까지

‘이태원 압사 참사’는 300명 넘는 사상자를 낸 최악의 사고다. 일주일이라 정해진 국가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여전히 전국은 슬픔과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참사는 경찰, 행정안전부, 용산구청 등 관계 부처 지휘부의 안일한 대응와 미흡했던 대처 등이 속속 드러나며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일부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그러자 여권 인사들은 촛불에 기름 붓 듯,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 정권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강원 춘천시 팔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로 '밝혀줄께(밝혀줄게)' 문구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집회. “추모·책임론” vs “정쟁 도구”

 

참사 이후 첫 주말이자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2만명이 넘는 추모객들이 촛불집회에 몰렸다. 진보 성향 단체인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 7번 출구 앞에서 집회를 주최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든 플래카드에는 ‘이태원 희생자를 추모합시다’, ‘윤석열을 끌어내리자’, ‘얘들아 미안하다’, ‘퇴진이 추모다’ 등이 적혀있었다.

 

이날 서울 뿐만 아니라 춘천, 전주, 제주 등에서도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강원 춘천시 팔호광장에 모인 춘천촛불행동 회원과 시민 등 50여 명은 정부의 무대책과 무책임을 비판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촛불을 모아 ‘밝혀줄께(밝혀줄게)’ 네 글자를 만들어 참사 원인을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도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전주시민들’ 주최로 시민 20여명이 모여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 “사고 없는 곳에서 편안하게 쉬세요” 등 메시지를 들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제주시민들’은 제주시청 광장에서 참사 희생자 추모와 부상자 쾌유를 위한 제주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지난 5일 강원 춘천시 팔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 마련된 현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서는 이를 두고 추모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배후에 더불어민주당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이 단체들을 향해 “사고를 겪자마자 타인의 비극을 정치투쟁의 도구로 악용하기 위해 현수막을 바꿔 단 채 감히 ‘추모’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타인의 죽음마저 정쟁의 자원으로 소비하는 운동업자에게 비극은 산업이고 촛불은 영업이고 선동은 생업”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은 정권 퇴진 운동 전문정당인가. 당 조직을 동원해 제대로 출범도 못 한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고 무더기 버스 동원에 나선 민주당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국민의 소중한 한표 한표로 선택한 대통령을 임기 5개월 만에 끌어내리겠다는 민주당은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정당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지난 5일 시청역 인근에서 핼러윈데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정부 규탄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 비대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당일 벌어진 집회에도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 사고가 발생한 10월29일 저녁 광화문에서 정권 퇴진 촉구 대회가 열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집회의 ‘이심민심’이라는 단체는 최대 81대 버스를 동원했다. 민주당은 전국적으로 버스를 대절하면서 참가자를 동원했다. 서울 시내 경찰 기동대가 모두 이 질서유지에 투입됐고 그날 밤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정 비대위원장은 또 “이심민심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때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시민소통본부 상임본부장 맡았던 사람”이라면서 “텔레그램 1번방에는 송영길 전 의원,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현역 의원 최소 10명과 전현직 시·군·구 의원 수십명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참사 충격 더한 공직자들의 태도와 무책임

 

참사에 대한 충격을 더한 것은 용산구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등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공직자들의 ‘면피성’ 발언이었다. ‘주최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참사 이후 여러 당국자들의 입을 통해 계속 되풀이됐다. 여기에 더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등 2차 가해를 더한 정치인들의 막말도 있었다. 이후 참사에 대한 당국의 안일한 대처, 부실한 대응 등이 속속 밝혀지면서, 이들의 발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긴급 현안 브리핑에서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냐’라는 질문에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 다음날까지 이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의 대응으로) 사고를 막기에 불가능했다는 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라고 자신의 주장을 계속했지만, 논란이 확대되자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국민들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한 발 물러섰다.

 

이후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 신고가 119로 처음 들어온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으로부터 1시간5분가량 늦은 오후 11시20분에야 사건을 인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고받은 오후 11시1분보다 19분이나 늦은 것으로, 재난대응 보고체계가 뒤죽박죽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제8차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태원 참사 대처와 관련해 지난달 31일 한 언론인터뷰에서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고요.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습니다”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박 구청장은 또 “이건 축제가 아닙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할로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되겠죠”라고 주장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56명이 숨진 참사 관련 외신 기자회견에서 농담하고 미소를 띄는 모습을 보여 질타받았다. 한 총리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과거 권위주의 시절을 거론하며 “경찰이 사전적으로 깊이 들어가서 개인의 집회를 제한하는 문제에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이 대한민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 총리는 이날 미국 NBC 기자로부터 “(이태원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시나”라는 질문을 받았고, 통역 장비 등을 통해 잠시 답변이 지연됐다. 그러자 한 총리는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또 일본 닛케이 기자가 “주최자가 있는 10만명 정도 모이는 행사였다면 경력을 얼마나 투입했을 건가”라고 묻자, 한 총리는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가 있었다면 굉장히 많은 경찰인력을 투입해야겠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김없이 등장한 ‘남 탓’ 시리즈

 

장외에서 희생자를 향해 돌을 던진 막말도 문제가 됐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지난 3일 자신의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국가도 무한책임이지만 개인도 무한책임”이라며 “왜, 부모도 자기 자식이 이태원 가는 것을 막지 못해놓고, ‘이태원 골목길에 토끼몰이하듯 몰아넣었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인지”라고 적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방송 저녁뉴스 비교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김 전 비서관은 이후 논란이 커지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을 문제 삼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재차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근대 자유주의 국가라면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데 언론은 문제 삼는다. 그만큼 언론의 시각이 유교 공산주의로 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를 ‘화대’라고 표현하고 ‘동성애는 정신병의 일종’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어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합동분향소를 차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매일 분향소를 찾고, 장례지원비와 지원금까지 주는 마당에 대통령실 비서관이 희생자의 부모를 탓하는 것은 표리부동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박성중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는 사고의 책임을 공영방송에 돌렸다. 박 간사는 지난 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고의 책임은 경찰, 지방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공적 기능을 담당해야 할 공영방송사에도 있다”며 “4대 공영방송 KBS, MBC, YTN, 연합뉴스TV는 사고 발생 전인 10월29일 저녁까지 안전에 대한 보도는 없이 핼러윈 축제 홍보 방송에 열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더 심각한 것은 사고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11차례에 걸쳐서 경찰신고가 쇄도하는 상황에서도 현장 중계차를 두고 취재하는 방송사가 사태의 심각성 보도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참사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4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세월호 이후에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 뭐라고 했느냐, ‘안전을 최고로 치고, 이런 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겠다’고 ‘다 막겠다’면서요. ‘시스템 다 만들겠다’며요”라며 “시스템 만들었냐, 112 시스템 왜 안 고쳤냐. 이런 사고가 자체는 일단 문재인 정권이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