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이 FTX 거래소발 유동성 위기설(說)로 인해 휘청이고 있다. 지난 5월 불거진 ‘테라·루나 사태’ 이후 다섯달 만이다.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이 최근 일주일 사이에 20%가량 하락하며 충격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FTX 인수를 하루 만에 철회하면서 여파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해당 가상화폐들에 투자유의 조치를 내리면서 경계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바이낸스는 9일(현지시간) 대변인 명의 성명서를 통해 FTX와의 인수 계약 중단을 발표했다. 바이낸스의 인수 번복은 FTX와 투자의향서(LOI)에 합의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바이낸스는 FTX에 대한 기업 실사 결과, 미국 규제 당국이 FTX의 고객 자금 관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는 보도 내용 등을 참고해 인수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FTX 부채에서 자산을 뺀 규모를 최대 60억달러(약 8조2000억원)로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FTX를 인수할 경우 바이낸스까지 유동성 위기가 번질 수 있다는 점이 인수 번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소식이 가상자산 시장에 충격으로 번지면서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다른 가상자산들의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정보 제공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0일 오후 2시50분 기준 비트코인은 전날 대비 10.21% 떨어진 1만6603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일주일 전 대비로는 18% 하락한 수치다. 비트코인은 한때 1만6000달러 선까지 무너지기도 했다. 이더리움 역시 전일 대비 9.98% 하락한 118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FTX 사태는 지난 2일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가 FTX의 계열사인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를 입수해 자산 중 3분의 1가량이 FTT토큰으로 채워져 있다고 보도하면서 촉발됐다. FTX와 알라메다는 모두 미국의 젊은 갑부인 샘 뱅크먼프리드 최고경영자(CEO)가 창업한 회사로 FTT토큰은 FTX가 자체 발행하는 가상자산이다. 이 보도는 FTX가 FTT토큰을 발행하고 알라메다가 이를 사는 방식으로 유지해온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두 회사 모두 재정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이를 이유로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가 지난 7일 바이낸스가 보유 중인 FTT토큰을 모두 팔겠다고 발표하면서 파장이 확산됐다. 결국 FTX에서 일종의 뱅크런(고객의 가상자산 대량 인출 상황)이 빚어졌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바이낸스가 FTX 인수 의사를 밝히며 수습에 나섰지만 하루 만에 철회하면서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더욱 커졌다. FTT토큰은 일주일 전 대비 80% 넘게 하락했고, FTX가 거래를 지원해온 솔라나도 40% 넘게 폭락했다. 이 기간 비트코인은 시가총액 기준 약 820억달러(약 112조7000억원)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에서는 연쇄적 폭락 현상을 빚었던 지난 5월의 ‘테라·루나 사태’가 재연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 업체 마렉스솔루션의 디지털자산 책임자 일란 솔랏은 “시장은 이제 완전한 공포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밥 이아치노 패스 트레이딩 파트너스 공동 창업자 겸 수석전략가도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비트코인이 9000달러까지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고팍스와 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 등 국내 주요 5대 거래소가 구성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는 이날 ‘가상자산 변동성 확대에 따른 투자주의 안내’ 공지를 게시했다. 이들 거래소는 “최근 해외 거래소 및 관계사에서 발생한 문제로 인해 시장 전체에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투자자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린다”며 “각 거래소에 맡겨 두신 투자자 여러분의 현금과 자산은 안전히 보관되고 있으며, 지급불능 사태로 이어지지 않으니 안심하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코인원과 코빗, 고파스는 FTT토큰을 투자유의 종목에 지정했다. 업비트와 빗썸 측은 FTT토큰을 상장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