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시대/빈야민 애펠바움/김지원 옮김/부키/3만5000원
1969년 12월, 시카고대학의 보수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세계 최대 주간지에 실린 이 한 장의 사진은 미국,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서 ‘신자유주의’ 득세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60년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철저히 ‘케인스주의’를 근간으로 움직였다. 온도 조절 장치로 온도를 맞추듯 정부가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 케인스주의는 1929년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이라는 굵직한 사건에서 위기의 자본주의를 건져 올리며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65년부터 불거진 인플레이션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정부의 개입이 중요했던 케인스주의를 벗어나 통화정책 외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뉴욕타임스(NYT) 경제 및 비즈니스 분야의 주필인 빈야민 애펠바움은 1969년부터 2008년까지 40년을 ‘경제학자의 시대’로 규정했다.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자들이 ‘골방’에서 벗어나 사회 요직에 포진하게 된 상황을 빗댄 것이다. 1979∼1987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폴 볼커조차 젊은 시절에는 데이터나 정리하면서 푸대접을 받으며 일할 만큼 경제학자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권력을 장악한 보수 경제학자들은 1970년 연준 의장, 1972년 재무장관 등 정치·사회 요직에 포진하며 사회정책 전반에 개입했다. 정부가 임용한 경제학자 수는 1950년대 중반 2000여명에서 1970년대에는 6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조지 스티글러, 조지 슐츠, 에런 디렉터, 로버트 루커스, 토머스 셸링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보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기반으로 다양한 정책을 착착 실현해 나갔다. 과세와 공공지출을 제한하고 규모가 큰 경제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며 세계화를 향한 길을 하나씩 마련하는가 하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설득해 징병제를 폐지하고 연방 법원을 설득해 독점 금지법을 적극적으로 집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