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있다. 동·서해 북방한계선(NLL)과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까지 무력화하는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3일 한·미·일 3국 정상이 6년 8개월 만에 가진 연쇄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도 한반도 문제다. 한·미·일 정상은 북핵 대응을 위한 핵우산 강화와 북 미사일 실시간 정보공유, 3국 간 경제안보대화체 신설에 합의했다.
지난 11일 만난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대뜸 1991년 남북이 체결한 ‘비핵화공동선언’이 문제라고 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대통령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전 전 원장은 “30년 전에 용도폐기된 비핵화외교 틀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전술핵 배치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함께 새로운 외교·통일·대북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북한의 도발과 7차 핵실험은 별개 문제”라며 “(연이은 도발은)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동시에 전쟁수행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정상회담 평가는 14일 이메일로 받았다.
―왜 비핵화공동선언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북한이 비핵화선언에 왜 합의했나.
“당시 북한은 대외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한국의 소련, 중국 수교 등으로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북한이 남북대화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급하게 합의한 게 비핵화공동선언이다. 나중에 북한이 이행합의서를 제기하면서 비핵화를 보는 북한과 한·미의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최근 북한 도발에 대한 한반도 내 전략자산 전개도 북한과 한·미가 보는 관점이 다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나.
“30년간 그렇게 시간을 보내왔다. 북한은 서명만 해놓고 장막 뒤에서는 핵개발에 몰두했다. 노태우정부부터 문재인정부까지 일곱 정권이 모두 실패했다. 굳이 진보·보수를 가릴 것도 없다. 어느 정권이나 비핵화공동선언이 최고의 가치였고, 절대 위반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형해화된 문건에 발목잡혀서는 안 된다. 굳이 ‘파기’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다.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국익에 부합하지 않다면 ‘탈퇴’하면 된다.”
―‘사정변경의 원칙’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주권국들이 자발적으로 조약에 가입하는 건 체결 당시 국익에 맞아서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하고 조약 상대방이 위반하면 국제법 원칙상 탈퇴할 수 있다. 마치 국내 법규처럼 탈퇴하면 처벌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국제무대에서 조약 탈퇴는 비일비재하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것도 이런 규정을 활용한 것이다. 이미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우리가 비핵화합의에서 탈퇴한다고 해서 북한에 핵개발 빌미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최근 북한의 행보는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은 한국과 전쟁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들의 핵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 등을 통한 위협행위를 멈추라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핵무력을 손에 쥐고 평창올림픽까지 참가해 남한의 경제적 협력을 얻어내고, 미국에도 원하는 걸 얻고자 했다. 하노이 회담서 김정은의 구상이 깨지면서 ‘정면돌파’ ‘자력갱생’을 내세워 핵무기 고도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7차 핵실험 수순으로 보는가.
“7차 핵실험은 기술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북한 도발과 핵실험 수순과는 별개다. 오히려 지난 정부에 비해 강화된 한·미연합훈련 맞대응 성격이 짙다.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는 건 동전의 양면이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협상력을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한·미·일 정상이 모여 핵우산 강화, 북 미사일 실시간 정보공유 등 안보협력 방안을 내놨다.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시의적절한 조치다. 무엇보다 한·미동맹 강화에 이어 일본과의 협력은 우리의 미사일방어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이 얼마 전 핵태세 정책서를 내놓은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정은은 북한판 핵태세 정책서를 통해 자신들의 핵사용 능력과 의지를 과시했다. 남한은 물론 괌·오키나와까지도 자신들의 사정권에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력자산이 한반도에 집결해도 싸울 수 있다는 걸 경고하는 차원이다. 무차별적인 도발에 나선 이유도 명확하다. 짧은 시간 각종 무기체계를 동시다발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지 점검함으로써 유사시 언제든지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9·11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하나.
“저는 2004년부터 전술핵재배치를 주장해왔다. 비핵화공동선언은 냉전이 끝나고 이념대결이 사라졌다고 믿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북한 스스로가 무력화시킨 합의다. 우리가 비핵화 파기하면 북한에 핵개발 명분을 준다면서 스스로 채운 족쇄를 이제 풀어야 한다. 우선 북한 핵위협을 관리하면서 장기적으로 동북아비핵지대를 목표로 해야 한다. 적어도 비핵화합의는 무용지물이 됐다. 백지상태에서 외교·통일전략과 북핵문제를 포함한 대북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얼마 전 미국 측에서 북한의 핵보유국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 나왔다.
“보니 젠킨스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차관이 콘퍼런스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군축(협상이) 옵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논란이 됐다. 미 국무부가 미국의 정책이 아니라며 일축했지만 우려스럽다. 그는 미국의 군축담당 최고 책임자다. 단순한 말 실수로 치부하기엔 의미심장하다. 비핵화 논리에 빠져 핵폐기만 주장하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 있다.”
―북핵에 대비한 주력은 우리 군이고 동맹은 ‘부수적 수단’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한미동맹을 가볍게 보자는 게 아니다. 다만 북한이 도발하면 정부는 한미동맹부터 언급한다. ‘자주국방’ 차원에서 우리 군이 어떻게 대처한다는 걸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런 정신이 있어야 동맹국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 동맹에 ‘의존’하기보다 ‘활용’한다는 생각을 갖는 게 옳다. 북한 핵을 무력화할 최첨단 무기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