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속에 건보 6년 후 고갈… 과잉 진료 등 대수술 시급 [이슈 속으로]

건강보험 개혁 ‘발등의 불’
상반기 진료비 12% 늘어 50조 첫 돌파
올 100조 전망 속 적립금은 21조 그쳐
2023년부터 적자… 2028년엔 모두 소진

베이비붐 세대 노년층 접어들며 지출 ↑
건보보장성 강화 ‘문재인케어’도 원인
초음파·MRI 이용 급증 재정에 악영향

고가 특수의료장비 과잉공급도 문제
정부, 이달 중 건보 재정개혁안 발표
지출 축소·시스템 효율화 서둘러야

내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고 2028년에는 적립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면서 건보 재정건전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향후 몇 년간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 의료비도 덩달아 급증하게 돼 여력이 있는 지금, 적기를 놓치지 말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와 함께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이 건보 재정을 위협하는 원인으로 꼽히면서 건보 지출 시스템을 효율화해 과잉 의료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건보 진료비는 50조845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상반기(44조8823억원)보다 11.6% 증가했다. 하반기에도 이 같은 증가세가 이어지면 올해 건보 진료비는 100조원을 넘을 수 있다. 건보 진료비가 급증하면 건보 수지도 악화한다. 가입자들이 진료를 많이 받을수록 건보 지출이 많이 늘어나는데 건보료 인상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내년 처음으로 7%대(7.09%)에 들어서는 보험료율을 법정 상한선인 8%로 올려도 2060년까지 당기 수지 적자 전망치 388조원, 누적 적자는 576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급격한 고령화에 건보 적립금 2028년이면 고갈



건보 수지 적자가 이어지면 지난 6월 기준 18조6000억원의 건보 재정 적립금도 빠르게 고갈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올해 건보 적립금은 21조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병원 방문이 줄면서 건보 수지는 올해까지 2년간 ‘반짝’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건보 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됐다. 내년에는 1조4000억원 적자, 2024년에는 2조6000억원으로 적자 폭도 커진다. 적자는 계속 불어나 2028년에는 8조9000억원에 달하게 되고 적립금은 모두 소진된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노년층에 접어들며 의료 이용이 계속 늘어나는 등 고령화가 건보 재정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이다. 여기에 2017년부터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건보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 10월 건보공단 국정감사 때도 여당 의원들은 문재인 케어 탓에 초음파·자기공명영상(MRI) 과다 이용이 나타나는 등 건보 재정이 나빠졌다고 비판했다. 또 문재인정부는 우리 건보 보장률이 60%대에 머물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를 밑돈다는 이유로 보장률 70%를 목표로 정책을 펼쳤지만, 지난해 기준 보장률이 65.3%에 그쳐 투입 비용 대비 효과가 저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다만, 우리나라의 1인당 경상의료비(보건의료 서비스·재화에 소비된 지출 총액)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6.9%씩 증가해 OECD 평균(3.3%)의 두 배가 넘는다.

그렇다고 윤석열정부가 이미 급여화된 부분을 비급여로 모두 되돌리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이미 초음파 검사 등 진료 시 받는 건보 지원을 다시 없앤다면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윤 정부도 국정과제로 재난적 의료비 부담 완화, 중증·희귀질환 부담 경감 등을 내걸었다.

◆단기간에 보장성 강화, 남용 가능성

다만 박근혜정부 때부터 시행된 보장성 강화 정책이 문재인정부를 거쳐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에 정책 시행 과정에서 허점이 있을 수 있고, 의료 이용 남용 가능성 등이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복지부도 지난 8월 재정개혁추진단을 구성하고 이달 중 건보 재정개혁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케어가 과잉 의료 이용으로 이어졌는지 재평가하는 한편, 재정지출이 급증한 항목이나 과다의료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건보의 보장성을 앞으로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인하지 않는다”며 “다만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 이용이 많아지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급자 위주의 급여를 효율화하는 등의 재정 안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는 적은데 의료 이용량은 많다. 복지부가 OECD가 발표한 ‘보건 통계 2022’ 주요 지표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2020년 국민 1인당 외래 진료(입원환자 외 진료)를 받은 횟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14.7회였다. OECD 평균(5.9회)의 2.5배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임상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적다.

◆장비 과잉공급이 과잉의료로

의료자원 중 인적자원은 적지만 물적자원인 의료장비들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공급자들이 CT와 MRI 등 고가의 장비를 과다하게 가진 상황에 보장성도 확대되면서, 불필요한 검사가 늘어나고 의료비 상승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 인구 100만명당 장비 수는 CT(컴퓨터단층촬영) 40.1대, MRI 33.6대, 양전PET(양전자단층촬영) 3.6대로, OECD 평균(2019년 기준)인 25.8대, 17.0대, 2.4대보다 많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CT·MRI 이용량은 지속해서 증가해 CT 이용량은 연평균 8.3%, MRI 이용량은 연평균 14.6% 늘었다. 장비의 성능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수가체계와 장비 규제·관리 체계 미흡 등이 무분별한 장비 유입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교수는 “고령화에 맞물려 간병비 문제, 돌봄 관련 지출 등 시간이 흐를수록 들어갈 돈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예컨대 CT나 MRI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고 필요한 부분에 급여를 늘리는 등 배분을 효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CT와 MRI 등 고가 특수의료기기의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특수 장비 도입과 관리에 대한 규제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보건경제와 정책연구 학술지에 실린 ‘우리나라 고가의료장비 공급현황과 미국 수요증명제도의 시사점’(박수경) 논문을 보면, 우리나라는 CT와 MRI 설치 의료기관에 대해 병상 수를 기준으로 신규 장비의 도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낮다. 논문은 “다수의 국가가 고가의료장비 도입 및 사용을 제한하고, 대표적인 민간 중심 병원공급체계를 갖춘 미국도 양적계획 기반의 수요증명제도를 고가의료장비에 대한 도입 규제수단으로 이용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