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 ‘스톱‘, 로비엔 나무 가벽… 국민과 소통에도 벽 생기나

尹, 도어스테핑 중단 … “불미스러운 사태 재발 방지 필요”

MBC기자·비서관 공개충돌 후
약식회견 6개월여 만에 ‘스톱’
대통령실 “난동에 가까운 행위”
김영태 대외협력비서관 사의
가벽 앞 반투명 유리문 공사도
일각, 용산시대 의미 퇴색 지적

정치권 ‘도어스테핑 중단’ 공방

박지원 “대통령이 문제 만들어”
홍준표 “늦었지만 참 잘한 결정”

대통령실이 지난 18일 MBC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격하게 항의한 사건을 문제 삼으며 윤 대통령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21일 잠정 중단했다. 또 도어스테핑이 이뤄지는 장소에 가벽도 설치했다. 대통령 행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용산 시대’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날 공지를 통해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도어스테핑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국민과 열린 소통을 위해 마련했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재개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이어 온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중단하겠다고 21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도어스테핑을 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도어스테핑이) 오히려 국민과의 소통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며 “(18일 도어스테핑은) 고성이 오가고 난동에 가까운 행위가 벌어지는, 국민 모두가 불편해할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고 비판했다.



‘불미스러운 사태’란 18일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뉴욕 순방 당시 MBC 보도에 대해 “악의적”이라고 평가하자, MBC 기자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 비서관과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인 일을 말한다.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은 MBC에 대한 출입기자 교체 요구나 대통령실 차원 해당 기자 출입 징계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관계자는 ‘근본적인 재발 방지대책이 MBC 기자 징계 요구냐’는 질문에 “대통령실은 즉각적, 직접적인 조치보다는 기자단과 협의 속에서 자정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며 “특정한 것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 내에서는 MBC 기자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에선 김영태 대외협력비서관이 도어스테핑 및 해당 공간을 담당하는 관리자로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강경파는 MBC에 대한 출입기자 교체 요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일각에선 재발 방지 원칙을 만드는 차원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어스테핑도 다수 참모가 윤 대통령에게 잠정 중단해야 한다고 건의하면서 중단됐다. 경호처에서도 또다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도어스테핑이 이뤄지는 청사 1층 로비에 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벽도 설치했다. 외교 일정이나 일부 비공개 일정의 경우 관계자 동선이 모두 노출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MBC 기자와 충돌 직후 설치한 점에서 언론에 대한 강경한 대통령실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현재 가벽 앞에 반투명 유리문 설치 공사를 하고 있다. 작업이 완료되면 가벽을 걷어낼 예정이다.

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면서 도입한 소통 강화 행보다. ‘용산 시대’를 의미하는 상징성이 크다. 구중궁궐이란 비판이 제기됐던 청와대 업무 방식에서 벗어나 대통령 국정운영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식 바로 다음 날인 지난 5월11일부터 지난 18일까지 총 194일간 61차례 도어스테핑을 이어왔다.

하지만 정치적 화법이 부족한 윤 대통령의 거친 발언이 매일 생중계되고 ‘대통령 리스크’가 커지자 여권에서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 관련 재발 방지 방안이 나올 경우 도어스테핑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영구적으로 폐지할 경우 청와대 이전 명분이 약해질 수 있어서다. 다만 MBC 기자 징계를 사실상 재개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한동안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野 “눈·귀 틀어막은 좁쌀 대통령” 與 “함량 미달 언론의 난동질 탓”

 

야당은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 중단을 두고 “좁쌀 대통령”이라며 맹비난했다. 반면 여당은 “잘한 결정”이라며 두둔하고 나섰다.

 

이날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는 도어스테핑 중단을 둘러싼 비판이 쏟아졌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자부했던 도어스테핑 장소에 기자와의 설전 직후 경호와 보안을 빌미로 이 정권의 불통과 오기를 상징할 가림막을 세우고 도어스테핑마저 중단한다고 하니 참으로 점입가경”이라면서 “국민 70%가 윤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했다고 압도적으로 지적해도 눈과 귀를 완전히 틀어막고만 있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가벽을 설치한다고 그러는데 차라리 땅굴을 파고 드나들라. MBC 기자가 그렇게 보기 싫고 두려운가”라며 “‘덩치는 남산만 한데 좁쌀 대통령’이라는 조롱이 많으니 주의하시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도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참 권위적인 발상이고 좀스러운 대응”이라며 “언론과의 소통에 벽을 치고 빗장까지 걸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비판 언론을 왕따시키고 기자들 취재는 제한하면서 친한 기자는 따로 챙기는 것이 윤석열 시대의 언론 정책인가”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형편없는 언론관으로 유명하지만, 윤 대통령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에 복당 신청을 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도어스테핑 중단과 가벽 설치를 두고 “그것은 공갈”이라며 “좁쌀 같은 대응을 했고 밴댕이 속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대통령이 돼야지 문제를 매일 만들어가는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정의당도 비판에 동참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날 열린 상무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언론과 국민 사이에 벽을 세우려 한다면 대통령은 국민 불신이라는 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8일 이기주 MBC 기자(오른쪽)와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끝난 후 설전을 벌이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은 입을 모아 MBC를 탓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도어스테핑 잠정 중단은 MBC가 초래한 것”이라며 “공영방송이지만 지금까지 일련의 모든 논란에도 사과 한마디조차 없었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의원은 “함량 미달 언론의 악의적인 난동질”이라고 비난했다. 권성동 의원도 SNS에서 “MBC는 대통령 순방 중 발언을 자막으로 조작하고, 백악관과 미 국무부에 왜곡된 메일을 보내 동맹을 이간질했다”며 “확실한 재발 방지대책이 없다면, 도어스테핑은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모든 책임은 MBC에 있다”고 못 박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SNS 글을 통해 도어스테핑 중단이 “늦은 감이 있지만 참 잘한 결정”이라고 옹호했다. 홍 시장은 “대통령의 국정 능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파이널 디시전(최종 결정)을 하는 대통령이 매일같이 결론을 미리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며 “대통령의 말씀은 태산같이 무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