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개발사업에서 환지는 종전 토지에 존재하던 권리관계를 그대로 사업 후 토지에 이동해 재분배시키는 것으로, 환지로 인해 토지의 위치, 면적 등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체비지는 도시개발사업 시행자가 사업에 필요한 경비에 충당하는 등의 목적으로 일정한 토지를 환지로 정하지 않고 자신 소유로 귀속시켜 매각 처분할 수 있게 한 토지를 이릅니다.
○○지구도시개발조합이 환지 처분 전 체비지를 A회사에 양도하고 A회사는 다시 피해자에게 매도해 피해자가 체비지 대장에 최종 취득자로 등재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조합장인 피고인은 A회사를 상대로 과다 지급 공사비 반환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그 채권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동의 없이 체비지 대장에 소유권 취득자로 등재된 A회사와 피해자 명의를 모두 말소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피고인에게 체비지에 대해 소유권 취득자로 기재된 명의자들의 권리를 보호·관리할 임무가 있다는 전제에서 피고인의 체비지 대장 말소행위는 그 임무 위배행위에 해당한다며 배임죄로 기소했습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여기서 재산상의 손해에는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질적 손해 발생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 하에서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시행자가 환지 처분 전 체비지를 처분하했을 때 매수인이 토지의 인도 또는 체비지 대장에의 등재 중 어느 하나의 공시방법을 갖추었다면 당해 토지에 관해 ‘물권 유사의 사용수익권’을 취득한다는 판례 법리가 있었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 판례 법리가 도시개발법이 제정·시행된 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고 “체비지 양수인 또는 전 매수인은 체비지에 대한 물권적 사용수익권을 취득하고 체비지 대장에의 등재는 이에 대한 공시방법이 된다. 따라서 시행자는 체비지 대장상 취득자로 등재된 자에 대해 체비지 대장상 명의가 함부로 말소되거나 변경되지 않도록 체비지 대장상 기재를 유지·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고인은 시행자인 조합의 대표자로서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된다. 체비지 대장의 피해자 기재가 말소되었다면 재산상 실질적 손해 발생의 위험은 이미 야기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무죄라는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폐지되고 도시개발법이 시행되었는 바 현행 도시개발법 제42조 제5항에 따라 체비지를 매수한 자는 토지를 점유하거나 체비지 대장에 등재되었다고 하더라도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친 때에 비로소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며, 따라서 환지 처분 전 시행자로부터 체비지를 매수한 자 또는 그 전 매수인이 자신의 매도인에 대하여 가지는 체비지에 관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권 등의 권리는 매매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일 뿐이고, 체비지 대장에의 등재와 같은 공시방법이 별도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2022. 10. 14. 선고 2018도13604 판결).
그리고 ”원심판결이 체비지 대장에의 등재는 환지 처분 전 체비지 양수인이 취득하는 물권 유사 권리의 공시방법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피고인을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인정하고, 피고인이 체비지 대장상 취득자란의 피해자 명의를 말소한 행위만으로 피해자의 재산상 실질적 손해 발생의 위험이 야기되었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며, 체비지 대장 취득자란 명의의 말소 사실이 법률상 특별한 의미나 효과를 가진다고 보기도 어려워 재산상 실질적 손해 발생의 위험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판결은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에 따라 체비지 대장에 등재된 양수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판례 법리와 달리, 현행 도시개발법에 따라 체비지 대장에 등재된 양수인의 법적 지위는 채권적 청구권자에 불과하고, 조합장의 체비지 대장 관리 사무가 타인의 사무 처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입니다. 향후 유사 사례에 관한 하급심의 심리·판단에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김추 변호사 chu.kim@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