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최근 집값은 가파르게 하락하는 가운데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각종 부동산 세부담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는 23일 공시가격 현실화 수정 계획과 주택 재산세 부과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평균 69.0%로 낮아진다. 당초 문재인정부의 로드맵상 목표치인 72.7%는 물론, 올해(71.5%)보다 낮아지는 것이다.
내년에 표준 단독주택은 53.6%, 표준지는 65.5%의 현실화율이 적용된다. 현실화율 인하로 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올해와 비교해 평균 3.5% 떨어질 것으로 추산됐다. 단독주택은 7.5%, 토지는 8.4%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는 2024년 이후 장기적으로 적용할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내년 하반기에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매년 소비자물가상승률, 집값, 지방재정 등을 고려해 0∼5% 범위에서 과표 상승 한도를 설정하기로 했다.
고령자·장기보유자 납부유예 제도도 신설된다. 집 한 채를 가진 만 60세 이상이나 5년 이상 장기보유자는 재산세 납부를 상속·증여·양도 시점까지 미룰 수 있다. 유예 혜택을 받으려면 직전 과세기간 총급여가 7000만원 이하이거나 종합소득이 6000만원 이하이고, 재산세가 100만원을 초과하면서 세금 체납이 없어야 한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지방세법을 개정해 내년 재산세 부과 때 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조합원입주권, 분양권을 상속받아 5년 이내 취득한 주택도 주택수에서 제외돼 1주택자일 경우 계속 1주택 혜택을 받게 된다.
공시가격이나 재산세의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은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정하면 곧바로 시행할 수 있다. 다만 종부세가 줄어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 7월 1주택자의 기본공제 금액을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고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율 체계를 폐기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잠실 주공5단지 82㎡ 내년 보유세 1050만원 → 627만원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과 1주택자 재산세를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하면서 내년 서민 가계의 세 부담도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집값 하락세에도 아직 시세가 2020년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종합부동산세 개편을 비롯한 세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은 만큼 일부 단지의 경우 체감 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3일 정부가 제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수정 계획안에 따르면, 내년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올해 71.5%보다 낮은 69.0% 수준이 된다. 앞서 문재인정부가 2020년 9월 부동산 공시가격을 10년에 걸쳐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0년 69.0% 수준이었던 전국 공동주택 평균 현실화율이 지난해 70.2%, 올해 71.5%로 높아졌다.
기존 목표대로라면 내년에 72.7%까지 올라가야 할 현실화율을 계획 발표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만큼 사실상 문재인정부의 로드맵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셈이다.
가격대별로 보면, 9억원 미만 아파트에 적용하는 현실화율은 68.1%, 9억원 이상∼15억원 미만 69.2%, 15억원 이상 75.3%다. 올해와 비교해 9억원 미만은 1.3%포인트, 9억원 이상 15억원 미만과 15억원 이상은 각각 5.9%포인트씩 낮아진다. 상대적으로 현실화율이 높았던 고가 주택이 수혜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팀장에 의뢰해 내년도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 45%를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82㎡)의 경우 종부세와 재산세를 합친 내년도 보유세는 627만원으로, 올해(1050만원)보다 40% 줄어들고, 2020년 보유세(837만원)보다도 25% 이상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112㎡)도 올해 2575만원이었던 보유세가 내년 2294만원으로 11%가량 하락할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실거래가 변동이 크지 않은 서초구 반포 래미안퍼스티지(84㎡)는 내년 보유세가 1454만원으로 올해(1456만원)와 비슷하고 2020년(1279만원)보다는 13% 이상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과열로 재산세만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재산세 부과 제도와 관련해 5% 이내의 과세표준 상한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공시가격이 올해처럼 17.2% 급등했을 경우 전년 과표가 2억5000만원(공시가격 5억5600만원)인 1주택자는 과표가 2억9300만원으로 상승해 재산세가 16만4000원 오른 89만8000원이 된다. 반면 정부가 과표상한율을 3%로 정하면 과표가 2억5900만원으로 낮아져 재산세도 76만7000원으로 줄어든다. 과표상한제가 없을 때보다 재산세를 13만1000원 덜 내는 셈이다.
과표 3억5000만원(공시가격 7억7800만원)인 1주택자의 경우 전년에 재산세 120만4000원을 냈으며, 올해는 과표상한제가 없을 경우 30만원 가까이 오른 150만3000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과표상한율이 3% 이내로 억제되면, 재산세는 127만3000원으로 낮아져 23만원을 덜 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1주택자의 세 부담을 완화할 수는 있겠으나, 집값 하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1주택자를 중심으로 세 부담이 줄어들어 ‘영끌족’ 등의 고통을 다소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규제 완화의 연속으로 시장연착륙을 도와주는 효과는 있지만, 집값 하락 폭을 일부 줄일 뿐이지 고금리 상황에서 시장을 상승 반전시키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종부세 개편 등 세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시가격에 대한 시세 반영 비율 장기 로드맵의 하향 수정과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 완화를 위한 추가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