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미성년 자녀 있다고 성별정정 불허 안돼" 판례 변경

미성년 자녀 2명 있는 '이혼' 트렌스젠더
가족관계등록부 표시 성별 정정 신청
대법 전합 "국제 인권규범 반해" 판단
"자녀 복리 위해 거부해야" 판례 변경
대법 "혼인 상태 성전환자 판결 적용 아냐"

미성년자 자녀가 있더라도 성별정정을 허가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판단이 나왔다. 11년전 미성년자 자녀가 받을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 전합 결정이 뒤집어진 것이다.

 

24일 대법원 전합은 A씨가 낸 등록부 정정 신청 재항고심에서 A씨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냈다. A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전합은 "미성년 자녀 있다는 이유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신청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국제 인권 규범에 반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동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전합 다수의견(11명)은 우선 성전환자 기본권의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심이 A씨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과거 전합 판례에 근거해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고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청을 기각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성전환자 역시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성을 법률상 진정한 성으로 확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성년 자녀와 성전환 부모 사이의 다양한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판시했다.

 

구체적으로 전합은 이번 결정을 통해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에 대한 성별 허가 여부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판례를 변경하면서 하급심들이 살펴봐야 할 심리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미성년 자녀의 연령 및 신체적·정신적 상태, 성전환에 대한 미성년 자녀의 동의나 이해의 정도, 성전환 부모의 보호와 양육 형태, 성전환자와 미성년자 및 다른 가족들과 형성·유지하는 관계 및 유대감 등이 심리 대상이라고 전합은 설명했다.

 

다만, 전합이 과거 전합의 모든 결정례를 뒤집은 것은 아니다. 과거 전합은 '당시 혼인 중에 있거나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 대해 판시했고, 이번 전합은 '혼인 중에 있지 않으면서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 대한 결정이다.

 

한편, 이동원 대법관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 및 미성년자인 자녀의 복리에 적합하고 사회 일반의 통념에도 들어맞는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밝혔다. 기존 판례를 유지해 상고기각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A씨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성전환자다. A씨는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서에 기재된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어 달라고 신청했다.

 

법원은 A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2년 결혼한 A씨는 6년 뒤에 이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2명의 자녀를 얻었다.

 

A씨는 법원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다. 항고심은 2011년 전합 판례를 인용해 A씨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 전합은 자녀의 복리를 감안하면 성별 정정으로 인해 가족관계등록부를 수정해줄 수 없다고 판시했다.

 

과거 전합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수정해줄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의 외관상 동성 결혼이 된다고 봤다. 동성 결혼이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목소리도 크지만, 현실적으로 비방의 대상인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미성년 자녀는 성장 과정에서 여러차례 가족관계등록부를 외부에 제출해야 할 수 있다. 과거 전합은 이 과정에서 미성년 자녀가 입을 상처를 고려한다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성별을 고쳐주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전합 결정 취지에 따라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예규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신청인에게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지 등을 조사한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