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상민 파면 안 하면 ‘단독 예산안’ 처리하겠다는 巨野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 시기 등을 재검토 하기로 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어제 의원총회 후 “이 장관 거취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일치가 있었다”면서도 “당초 30일 발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검토해야 하는 상황 변화가 생겨 시기와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 해임안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오늘 발의한 뒤 다음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하겠다는 당초 방침에서 후퇴한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비해 이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까지 검토 중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청래 최고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강경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건 당 안팎의 사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면서 국정조사 보이콧도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당내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상민 파면’ 카드를 너무 일찍 꺼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민주당의 이 장관 해임안 추진은 처음부터 명분이 약했다. 거대 의석을 앞세워 이 장관 해임안을 밀어붙이는 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물타기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대표는 그제 “민주당은 경찰국 예산이나 초부자 감세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우리가 가진 권한을 행사해 증액은 못 할지라도 옳지 않은 예산을 삭감한 민주당의 수정안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라고 했다. 여당과 예산안 합의가 되지 않으면 다수당인 민주당이 다음달 2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정부 원안을 부결시키고 민주당이 단독으로 마련한 수정안을 제출해 단독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야당 단독 예산안’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인 데다 적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정부·여당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말고 엄중히 문책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리기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 장관 경질을 요구하는 건 정략적이다. 민주당은 약속대로 예산안을 서둘러 처리하고 국정조사에 착수하는 게 옳다. 민생과 관련된 예산안까지 볼모로 삼는 건 잘못이다. 예산안이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