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초유의 ‘야당 단독 예산안’ 처리까지 시사한 배경에는 국민의힘뿐 아니라 정부까지 예산안 심사에 불성실하게 임하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여기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거취를 놓고 야권에서 연일 압박하는데 여권이 국정조사 보이콧을 검토하자, 맞설 수 있는 카드가 결국 예산안과 연결시키는 것뿐인 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 부담이 큰 만큼 예산안 처리 기한 내 통과는 어렵더라도 시간을 두고 합의 처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이) 국정조사를 볼모로 잡고 무책임한 지연작전으로 일관하겠다면 민주당 단독이라도 예산 심사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지연작전을 포기하고 민주당 탓을 그만두면 지금이라도 법정 시한 내 예산 처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날 이재명 대표에 이어 박 원내대표까지 단독 예산안 심사를 언급하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두고 여야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또 이 장관에 대한 탄핵으로 바로 가자는 의견에 힘이 실리면서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나온다. 한 초선의원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기도 전에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여당이 국정조사 특위 보이콧을 운운하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고 하는 말들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파국으로 치달았던 예산안 심사는 이날 속개했다. 다만 예산안 사업 심사 대신 그동안 심사했던 소회를 밝히면서 마무리했다. 위원장과 양당 간사 간 협의체로 이관해 감액 심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만 공식 소위는 아니어서 ‘짬짜미’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에 국민의힘이 국정조사 보이콧으로 맞서자 이를 예산안과 엮으려 한 민주당 지도부 방침은 당내에서도 다소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중도층이 볼 때 자꾸 사안을 엮어서 가져가려 하는 건 너무 정략적으로 비친다”며 “특히 예산안은 총선을 1년 앞둔 내년 지역 사업과 연결돼 있는데 너무 강성으로 가려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무선에서도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적은 없어서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민주당도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 관련 예산 등은 증액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감액’만 할 수 있는 야당 단독 예산안 처리는 실현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에선 예산안 처리 이후 국정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합의한 만큼 민주당이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고, 오로지 이 대표 구하기에 올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겨우 불씨 살린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 합의인데 모든 것이 제대로 되도록 합의를 지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