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사 공동 책임 강화’ 중대재해법 개선, 법제화 서둘러야

정부가 어제 중대재해를 기업 자율로 해결해 나가도록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산업안전정책 기조를 사후적 처벌·규제 중심에서 노사가 함께 책임지는 자기규율 예방 체계로 전환해 현재 0.43인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수)을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까지 낮춘다는 게 골자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올 1월27일부터 시행됐지만 대전 아웃렛 화재, SPC계열사 제빵공장 끼임 사고, 안성 물류 창고 붕괴 등 중대 사고가 줄지 않은 데 따른 조치다. 옳은 방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전부터 산재 예방 효과보다는 산업 현장의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기업인들에 대한 과잉 처벌로 경영 활동을 제약·위축시킬 것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처벌 근거가 되는 규정이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행 후 기업 10곳 중 7곳이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중대재해도 줄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산업 현장 산재 사고 사망 노동자는 510명으로 작년 501명에 비해 오히려 증가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새 로드맵은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무엇보다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제시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위험성 평가를 핵심 수단으로, 기업이 중대재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위험 요인을 사전에 파악해 개선책을 만들고 이행하는 위험성 평가 제도를 안착시켜 사고 발생 시 예방 노력의 적정성을 엄정히 따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위험성 평가 결과를 근로자가 공유하는지 인터뷰를 통해 확인키로 한 것도 진일보한 조치다. 처벌 요건을 명확히 해 상습적이고 반복되는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확대키로 한 것 역시 합리적인 조치다.

관건은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 설득이다. 이들은 “중대재해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반발할 태세다. 하지만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영국은 1960년대에 감독과 처벌을 강화했는데도 산재사고가 감소하지 않자 사업장의 자율예방정책으로 전환했고, 독일은 노사가 재해예방규칙을 제정해 시행하면서 사고를 크게 줄였다. 정부는 산업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안의 법제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