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대란' 현실화· 건설현장 '셧다운'… ‘멈춰선 물류’에 곳곳서 비명소리

유류제품 수송 지연 사례 속출
수도권 중심 주유소 ‘기름대란’
장기화 땐 지방도 품절 우려 커

시멘트·레미콘 업계 피해 누적
대형 건설사도 재고 소진 임박
둔촌주공 등 공사 지연 불가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 일주일째를 맞은 30일 전국 곳곳에서 산업계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지난 6월 1차 때와 비교하면 겨울 비수기라 건설업계의 손해는 다소 덜하지만, 정유업계와 철강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누적 피해액이 최소 1조원에서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유가 표시판에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휘발유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유조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휘발유가 품절된 주유소가 늘어나고 있다. 뉴시스

이날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화물연대 조합원 약 6500명이 전국 17개 지역 160곳에서 집회를 벌이거나 현장 대기 중이다. 전체 조합원(2만2000명 추산)의 3분의 1 규모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전국 12개 항만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시 대비 42% 수준으로, 부산항을 중심으로 물동량이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유소의 ‘기름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화물연대의 1차 파업 당시 10% 안팎이던 탱크로리(유조차) 종사자의 화물연대 가입률은 최근 70%를 넘겼다. 회전율이 빠른 서울의 일부 주유소부터 재고가 바닥났고,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지방의 거점 주유소도 품절 사태가 빚어질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화물연대 파업 영향으로 유류제품 수송이 지연돼 품절된 주유소가 전국 23개소라고 밝혔다. 오후 3시 기준 휘발유 품절 주유소가 22개소, 경유 품절이 1개소이며 지역별로는 서울 15개소, 경기 3개소, 인천 2개소, 충남 3개소에 달했다. 산업부가 전국 주유소의 재고량을 파악한 결과 전날 기준 휘발유 8일분, 경유 10일분가량으로 집계됐다.

엇갈린 행렬 화물연대 파업으로 30일 경기 성남시 대한송유관공사 서울지사 앞 도로에 유조차들이 멈춰 선 가운데,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유조차는 기름을 운송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이 일주일째를 맞으면서 일부 주유소에 휘발유가 동나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성남=남정탁 기자

산업부와 에쓰오일을 비롯한 정유 4사, 대한석유협회, 한국석유공사, 한국석유관리원 등은 정유공장과 저유소 등 거점별 입·출하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수송 차질이 우려될 경우엔 화물연대 미가입 차량을 활용하는 비상수송체계를 가동 중이다. 정부는 1일부터 군용 탱크로리 5대와 수협이 보유한 탱크로리 13대를 긴급 투입할 예정이다.



시멘트·레미콘업계와 건설현장의 피해도 계속 누적되고 있다. 정부가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지만, 화물연대 조합원은 전혀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시멘트가 출하되지 못하면서 시멘트를 원료로 하는 레미콘 공장이 가동 중단 상태다. 광주시 등에 따르면 지난주 5000㎥였던 광주 지역 레미콘 생산량은 이번주 0인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도에서는 춘천과 원주 등 일부 지역 소규모 공장만 가동되면서 도내 132개 레미콘 공장 중 109곳(82.6%)이 멈춰섰다.

화물연대 총파업 일주일째인 30일 광주 광산구 한 레미콘 업체에 시멘트 수급 차질로 운행을 멈춘 레미콘 차량들이 서 있다. 뉴시스

레미콘 생산이 멈추자 전국 건설현장도 ‘셧다운’을 맞았다. 대한건설협회는 전국 985개 현장 중 577개(59%) 현장에서 레미콘 타설이 중단됐다고 집계했다. 주택건설현장의 경우 전국적으로 200개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됐으며 이번주 중 128개 현장의 추가적인 공사 중단이 예상된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등 수도권 건설현장은 콘크리트 타설 등 대체공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파업이 조금만 길어져도 공사 지연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둔촌주공은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로 가뜩이나 조합 내부 사정으로 공사가 지연됐는데, 이번 사태로 금융이자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날 한국시멘트협회·한국석유화학협회·대한석유협회·한국자동차산업협회·한국철강협회·한국사료협회 등과 공동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산업계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시멘트업계와 철강업계의 누적 피해액이 각각 1000억원, 8000억원에 달하고, 석유화학업계의 손실이 하루 평균 680억원씩 쌓이는 등 주요 분야의 매출 피해만 총파업 이후 1조원을 훌쩍 넘겼다. 항만 분야와 수출입 업체 등의 손실까지 합산하면 이미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8일간 지속된 1차 파업 당시 산업부는 국내 산업계 피해액을 2조원 수준으로 평가한 바 있다.

화물연대 총파업 일주일째인 30일 오전 경기 성남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레미콘 타설에 앞서 철근 골격을 갖추는 배근 작업까지 마쳤으나 타설 작업은 올스톱된 상황이다. 연합뉴스

◆“운송거부” “총파업” 용어까지 시각차

 

안전운임제 영구화 등을 둘러싸고 강경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정부와 화물연대의 시각 차이는 각자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0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화물연대의 이번 총파업을 ‘집단운송거부’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집단행동을 ‘총파업’이라고 규정한 화물연대와 달리, 정부는 화물연대의 구성원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자영업자)로 보고 있어서다. 같은 이유로 화물연대를 정식 노동조합으로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업무개시명령의 대상이 된 시멘트업계 운수종사자들의 경우 운수사에서 급여를 받는 운전자도 있지만, 화물연대 소속 운전자들은 대부분 사용자에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차량을 직접 보유하거나 화주에게 대차해 일하고 있다. 현행법상 택배업계 종사자 등과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에 해당하는 셈이다.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김태영 화물연대 수석부위원장(왼쪽)이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2차 교섭이 결렬되며 자리를 떠나는 구헌상 물류정책관(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국가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한 취지라며 전날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해 시멘트 운수 종사자 2천500여 명의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연합뉴스

반면 화물연대는 이번 집단행동을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파업이라고 맞서고 있다. 헌법 제33조 1항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의 이른바 노동 3권을 규정하고 있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 행사인 만큼 불법 행동이 아닌 데다, 정부의 논리대로 화물연대 노조원을 특고로 본다 해도 자영업자에게 업무를 강제하라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에 위배된다는 게 화물연대의 주장이다.

 

화물연대는 노동 3권을 근거로, 정부와의 협상에 대해서도 ‘교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노조가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에 따라 안전운임제 등 근로환경을 카운터파트인 국토부와 논의하는 자리라는 의미다.

 

정부는 교섭 대신 ‘대화’, ‘면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국토부는 이날 오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오후 2시 세종에서 국토부와 화물연대 간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교섭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인 만큼 정부와 화물연대는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주와 운수종사자가 원만하게 협상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안전운임제 등 제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대화에 참여해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